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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조순형 전 국회의원)가 13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토론했다. 조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범(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김태수(변호사), 방희선(변호사), 유미화(서울 반포고 교사), 이재진(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정희(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여울(문학평론가 겸 작가) 위원이 참석했다. 이덕환(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위원은 해외 출장 관계로 따로 의견을 보내왔다.

―2월 7일 서울행정법원이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을 10년 동안 연장하도록 한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수명 연장 의결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최신 안전 기술을 1호기의 안전성 보강 과정에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모든 언론이 보도했지만 탄핵 정국의 영향으로 크게 다루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8일자 A1면과 A8면 기사 및 〈한삼희의 환경칼럼 : 원자력계의 傲慢(오만) 징계한 법원〉(11일) 등에서 보도했지만 빠진 것이 있다. 우선 적법한 의결 부분에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안위에 운영 변경 전후 비교표와 최종 안전 보고서 등을 제출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이 빠졌다. 경쟁지에는 실렸으나 조선일보는 다루지 않았다. 법원이 지적한 문제 중에는 두 위원이 결격사유가 있는데도 의결에 참여해 위법이라고 판단한 것도 있다. 조선일보는 이들의 결격사유가 무엇이고, 누군지 보도하지 않았다. 경쟁지 보도를 보니 한 위원은 한수원 자문위원으로, 다른 위원은 한수원 부지선정위원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또 한수원은 37년간 핵심 두 가지에 대한 안전 검사를 하지 않았다. 이게 2년 전 적발되었는데도 최근에야 과징금 7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작년 한수원 영업이익의 0.002%에 불과하다. 한수원은 2013년에도 엉터리 부품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그때도 언론마다 지적하고 독자권익보호위원회도 원안위를 질타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원안위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독립법을 만들 때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위원은 9명인데 정부가 5명, 국회가 여야 2명씩 추천하는데 제대로 고르는지도 의문이다. 원안위가 독립성이라는 울타리에 숨어 있다 보니 사각지대가 되었다. 이제 원안위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원안위의 문제점에 대한 심층적 후속 보도가 필요하다.

―조선일보 독자 중에 요즘 조선일보의 정체성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보수 정론지로서의 자리 매김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수도 지속적 개혁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조선일보도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보수 신문이지만 극단의 보수는 배제하는 것이 어떨까. 우리 집단 아니면 좌익이나 빨갱이로 몰아가는 집단·정치인들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일자리 정보는 겉핥기식으로 말고 정확하게 알려달라. 〈朝鮮칼럼: 국민 속이는 말장난 일자리 대책〉(2월 8일), 〈朝鮮칼럼: 더 신뢰할 만한 일자리 공약을 기대하며〉(2월 13일)는 여러 측면에서 분석했다. 13일 시작한 시리즈 〈동업의 재발견〉도 좋은 기획이다. 10일 A1면에는 일자리와 관련해 〈경제계, 대선 정치판 작심 비판〉을 실었다. 문제는 기사든 칼럼이든 대부분 일자리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일자리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현상만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중년·노년층 다 일자리가 부족하다. 그러나 정치권도 정부도 늘리겠다고만 하지 어떻게 늘릴 것인지,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구체적이지 않다.

―〈구조조정커녕 세금으로 부실大 연명시킨 엉터리 행정〉(2월 3일 사설)에서 지적한 대로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건 맞는다. 2013년 4년제 대학이 340개였는데 2015년 339개로 1개밖에 줄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만 탓할 일은 아니다. 행정이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국회에도 문제가 있다. 대개 지방 사립학교는 유지들과 연결돼 있다. 그 이권 다툼에 부실 대학이 연명되고 있다. 이 문제는 손을 봐야 한다.

―〈'미국과 방위비 협상' 일단 청신호… 틸러슨 국무, 의회 답변 자료〉(2월 10일 A1면) 기사는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닌가. 틸러슨 장관의 의회 답변 자료를 보고 '미국 외교 정책이 이런 방향으로 갈 거다'라고 했는데, 그 자료는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트럼프의 성정에 비춰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GM 노조, 3000만원 받고 '정규직 장사'〉(2월 8일 사회면)는 척결해야 할 문제다. 대기업 노조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지적하는 것은 좋다. 다만 노조가 정규직 장사 책임의 거의 대부분을 져야 할 것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문제다. 한겨레를 보면 노사 담당 부사장, 전략 담당 상무, 부·차장 등 실무자들과의 결탁 없이는 가능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채용 비리 구조를 명확히 밝혀주어야 한다.

―1월 11일자 피플면에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동문의 2017 新年 모임 사진을 실었다. 그런데 사진 설명을 보니 3개 대학의 모임이 한날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6일(서울대), 10일(연세대), 4일(고려대) 행사를 모아서 한꺼번에 소개했다. 결국 소수 독자를 위한 기사 아닌가.

―'대선 후보'라는 호칭에 문제가 있다. 스스로 그렇게 부르면 현재로선 불법 선거운동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선관위가 각 캠프나 언론사에 경고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없다. 나라가 룰이 없는 것이다. 언론이 부지불식간에 잊었다고 해도 이제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이회창 선관위원장이 김영삼씨에게 선거운동 하지 말라고 경고장을 보낸 적이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이 틀리면 지적하고, 여러 사람이 저지르면 넘어가는 이상한 사회다.

―조선닷컴에 실린 〈원로 법조인들 공개적으로 탄핵 심판 반대 광고, 파장 주목〉(2월 9일) 기사에 댓글이 많이 달렸다. 그런데 기사는 "원로 법조인들이 공개적으로 탄핵 심판을 반대하는 의견을 제시해 귀추가 주목된다"고 시작한 뒤 참여 법조인들의 명단을 싣고 광고의 선언문 내용을 받아 적는 식으로 작성되었다. 기자가 쓴 문장은 몇 줄 안 되고 광고를 옮겨 적은 것이다. 인터넷 기사도 기자가 쓴 기사 아닌가. 그들이 그런 의견을 낸 이유를 전화로라도 물어야 했다. 이런 기사는 독자의 신뢰를 위협할 수 있다.

―〈외국 근로자 1% 늘면 내국인 임금 1% 줄어〉(1월 24일 사회면) 기사는 왜곡된 이분법으로 접근했다. 외국인 근로자가 적(敵)인 것처럼 비치는데, 진짜 문제는 그만큼 취업 시장이 불안하다는 것 아닌가. 약자끼리 대립하게 만드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中의 '날씨 공정'… 국토 10%에 인공 비 쏜다〉(1월 27일 A2면)에서 국내 전문가가 "지속적 인공 강우로 사막화된 지역의 생태계가 복원되면 황사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는데 지나치게 순진한 분석이다. 황사 발원지의 생태계 붕괴는 강수 부족과 토양의 유기물 고갈이 복합 작용한 결과이다. 오히려 과도한 인공 강우 시도가 주변 국가의 기후에 미칠 부작용을 다루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인공 강우에 사용되는 요오드화은의 문제도 지적해야 했다.

―〈대통령 합성 누드화 파문… '풍자의 線' 넘어 여성 모독 문제로 확산〉(1월 25일 A5면)을 읽고 분개했다. 여성 인권을 모독하는 저질스러운 범죄이다. 국가적 수치이고 사회가 미쳐가는 것 같다. 언론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강력히 비판해야 마땅한데 해프닝 정도로 취급한 다수 언론에 실망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위험한 대치 국면서 벌어진 '朴 대통령 누드화' 파문〉(1월 28일)에서 문제점을 지적했다.

―요즘 국내에서는 탄핵과 정치 뉴스가, 외국에서는 트럼프 뉴스가 쏟아지니 언론사 간 지면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오피니언면에 눈이 많이 간다. 〈독자 칼럼: 영어, 누리 과정부터 공교육으로 책임지자〉(2월 10일)는 검토할 만한 문제 제기라고 본다. 〈발언대: 한국형 자유학예대학을 설립하자〉(1월 26일)도 의미 있는 주장이다. 미국의 자유학예대학(Liberal Arts College) 개념이 우리 고등교육 문제를 보완할 옵션이 될 수 있다. 〈발언대 : 인구, 數보다 質에 승부 걸자〉(1월 17일)도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다. 칼럼의 주장처럼 질에 승부를 걸어 적은 인구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든지 아니면 애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데스크에서: 블랙리스트보다 못한 僞善〉(1월 26일)은 현상이 아닌 본질을 보고 적폐를 해소할 근원적 해결로 들어가야 한다는 좋은 지적을 했다. 〈태평로: 피눈물은 속으로 흘리는 것이다〉(1월 14일)도 독일의 예를 들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김준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검찰청 차장검사가 쓴 〈발언대: 검·경, 수사권 다툼 말고 팀 정신 살려야〉(1월 23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원들의 기사 제안]

고교생 '조건 만남' 충격적… 性교육부터 뜯어고치자
화재 현장에선 무용지물인 소방훈련 실태 고발을
'맛공', 입시 말고 '공부하는 어른들' 얘기도 싣길

―최근 장제원 의원의 고교생 아들이 과거 비슷한 나이의 여성과 '조건 만남'을 시도한 듯한 글이 공개돼 말이 많았다. 요즘 미성년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성매매가 암암리에 이뤄진다고 한다. 너무 심각하다. 부모의 손도 닿지 않는다. 성교육으로도 컨트롤할 수 없는 세상이다. 프랑스의 성교육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성은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아직도 쉬쉬하는 부모가 많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소중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의 성교육이 우리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도구로 삼는 성매매는 가장 무섭고 폭력적인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가르칠 수 없으니 언론이 이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폭로성 기사로 끝낼 게 아니라, 성교육을 다시 하자는 쪽으로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국정과 검정 역사 교과서의 구체적 차이가 무언지를 한번 제대로 정리해주면 좋겠다. 3년 전쯤 국정·검정을 비교한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다시 한 번 차이가 나는 이슈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재 상황이 제대로 정리될 것이다.

―'맛있는 공부' 섹션에 〈문과는 미래 사회에 안 어울린다고? 폭넓은 인문지식 큰 무기가 되죠〉(1월 23일 1면)가 실렸다. 진짜 재미있는 공부는 졸업 후에 시작되는 것 같다. 나도 서른이 넘어서야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발상을 전환해서 입시 위주인 '맛있는 공부'를 성인 교육으로도 넓혀보면 어떨까. 요즘엔 '토요인문학'이라고 해서 주말에 공부하는 성인도 많다. 그런 것들을 자세히 소개하면 진짜 '맛있는 공부'가 될 것 같다.

―지난 4일 경기 동탄신도시의 초고층 주상복합 메타폴리스 상가에서 사망 4명 등 사상자 51명을 낸 화재가 일어났다. 그 시각 현장에 있었다. 58층이었는데 매캐한 냄새에 처음엔 어느 집에서 음식을 태우나 생각했다. 화재 안내 방송도 너무 작아 듣지 못했다. 나중에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 상황에서 타면 안 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혼비백산 1층으로 내려왔다. 우왕좌왕하다 보니 대피 요령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간의 지식과 훈련이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훈련에 문제가 많음을 새삼 확인했다.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소방 안전 검사나 교육이 철저히 지켜지도록 언론이 관심을 기울여달라.

―조선일보는 기자 이름 뒤에 이메일 주소를 달지 않는다. 이유가 무언가. 욕하는 무분별한 독자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건가. 그런 독자도 있겠지만 격려하거나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친절한 언론이라면 콘택트 포인트를 제공해야 한다. 언론이 옥상가옥처럼 느껴지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도 과거에는 이메일을 달았었는데 이제라도 병기하면 좋겠다.

―광고 성격의 무분별한 섹션 남용은 지양해야 한다. 요즘 '페이크 뉴스'가 문제이다. 없는 사실을 만드는 것도 페이크 뉴스지만, 기사 형식으로 광고하는 것도 일종의 페이크 뉴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