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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건 2월 13일 저녁 6시 30분이었다. 6시 40분에 공항을 출발해 7시 2분 일왕의 궁인 고쿄(皇居)에 도착했다. 해외 순방을 마친 일본 총리들이 해야 하는 귀국 신고서를 작성했다. 7분 뒤인 7시 9분 고쿄를 떠난 총리는 7시 25분에 도쿄 오다이바의 민영방송 후지 텔레비전에 도착했다. 7시 55분부터 8시 24분까지 '프라임 뉴스'에 출연했고 2분 뒤인 8시 26분 방송국을 출발해 8시 51분에 시부야의 공영 NHK 방송국에 도착했다. 9시부터 9시 31분까지 9시 뉴스에 출연한 총리는 9시 36분에 방송국을 떠나 39분 사저(私邸)에 들어갔다. 저녁 6시 30분부터 9시 36분까지 거의 분 단위로 짜인 각본에 맞춰 촬영된 영화 같은 밤이었다.

2박3일 미국 방문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이런 일정을 강행한 이유는 뭘까. 총리는 기대와 논란 속에 치러진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궁금증을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정상회담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아베 총리가 비상사태라도 벌어진 것처럼 민영과 공영방송국 2곳에서 했던 인터뷰 내용 자체는 대단하지 않았다. 그는 주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회동 등 정상 외교의 뒷이야기를 친구에게 수다 떨듯 전했다. "보통 나는 골프를 치면 18홀 정도 치는데 이번엔 27홀을 돌아 무척 힘들었다" "트럼프와 골프 카트를 같이 타면서 지역 정세와 동맹 관계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온종일 같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바마 대통령과 4년 동안 함께 지낸 시간보다 트럼프와 이번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소식이 알려진 직후 상황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만찬 중에 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견을 하고 싶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나도 회견장에 가서 한마디 거들겠소'라고 했다." 트럼프의 "동맹국인 일본을 100% 지지한다"는 발언은 이런 과정을 통해 나왔다. 저녁에 가족과 밥 먹으면서 TV를 시청하는 보통 일본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아베식 '귀국 보고'였다.

우리 대통령들의 정상회담 보고는 거창하고 그 내용도 중후장대하다. 여야(與野)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함께 밥 먹으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어떻다는 식의 설명이 이어진다. 청와대 대변인의 언론 브리핑도 이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떨 때는 여야 대표들이 청와대에 가느니 못 가느니 하면서 말다툼만 일주일씩 한다. 국민이 많이 보는 방송, 신문과 인터뷰하는 간단한 소통 방식을 놔두고 참 어렵고 비효율적 소통 방식을 고집한다. 지난 14일 교도통신이 발표한 아베 총리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61.7%였다. 한 달 전보다 2.1%포인트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