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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귀엽던 꼬마 아이가 벌써 어른이 됐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지."

지난 15일 저녁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있는 한 교회에서 만난 박혜자(92) 할머니가 한 외국인 청년의 현재 사진을 어릴 적 사진과 비교하며 감회에 잠겼다. 자신이 14년간 매달 3만5000원씩 후원금을 보내준 인도 청년 라케시 쿠마르(22)였다.

인도의 가난한 동네인 라이푸르에서 태어난 라케시에겐 할머니의 후원금이 적지 않은 돈이었다. 라이푸르 주민들의 하루 평균 소득은 2달러(약 2300원)가 채 안 되는 수준이다. 라케시는 박 할머니의 후원 덕분에 또래보다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석공(石工)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졸업 후 더 이상 후원을 받지 않아도 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박 할머니는 남을 도울 만큼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1925년 서울 서대문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박씨는 여섯 살 때 장티푸스를 크게 앓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후유증으로 오른쪽 청력을 잃었고,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됐다. 스무 살 때 결혼한 남편과 문방구를 하며 알콩달콩 살았지만 36년 전에 남편을 간암으로 잃었다. 지금은 저소득층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매달 정부가 지원하는 50만원가량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고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20여년이 흐른 2003년.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이 박씨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외국에 못 사는 꼬마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더라고. 그 아이들이 밥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자녀를 낳지 못한 박씨에게 아이들은 언제나 부러운 동경의 대상이었다. 박씨는 교회 목사님의 소개로 국제 어린이 양육 기구인 한국컴패션을 찾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매달 3만5000원씩 후원금을 내고 라케시의 후원자가 됐다.

라케시가 두세 달에 한 번씩 보내는 편지는 박씨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줬다고 한다. '할머니 덕분에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친구들과 동물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처럼 평범한 일상을 적은 내용이지만, 박씨는 이 편지들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자식을 키우는 기쁨을 알게 됐다. 박씨는 "한 번도 라케시를 만나진 못했지만 늘 함께 있는 것 같아. 내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야"라고 했다.

박씨는 한국컴패션의 최고령·최장기 후원자다. 그는 "질병과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던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이 기적 같다"고 했다. 라케시에 대한 후원을 끝낸 박씨는 최근 인도네시아에 사는 얼굴 모르는 어린이를 매달 4만 5000원씩 돕기 시작했다.

한국컴패션은 박씨를 비롯한 국내 후원자와 가족 등 1000여명을 초청해 18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대강당에서 '아주 특별한 졸업식'을 연다. 참석자들은 모두 박씨처럼 해외 청소년들을 지원해온 사람들이다.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청소년이 후원을 마치고 독립하는 것을 자축하는 자리다. 한국컴패션은 전 세계 26개국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이 12만명에게 한국의 후원자를 일대일로 연결시켜준다. 후원은 통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홀로서기가 가능할 때까지 지속된다.

이날 졸업식에는 '연예인 기부 천사'로 유명한 션·정혜영씨 부부의 선행을 보고 감동받아 100명의 아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피부과 의사 황성주(49)씨, 발달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며 외국의 더 어려운 아동을 돕기 시작한 이옥주(여·58)씨 가족 등이 참석한다.

기고자 :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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