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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설이 된 스웨덴 명우(名優) 잉그리드 버그먼이 정상에 서있던 1949년이다. 버그먼이 이탈리아 감독 로셀리니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 영화, 잘 봤어요. 혹시 영어를 잘하고, 독일어도 까먹지 않았고, 불어도 웬만큼 하고, 이탈리아어로 '사랑해요'를 할 줄 하는 스웨덴 여배우가 필요하세요? 제가 준비돼 있어요." 데뷔 12년 차인 로셀리니도 잘나가던 신예 감독이었다. 그해 두 사람은 영화로 만났고,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

▶버그먼은 실제 외국어에 능통했다. 불후의 명작이 된 1942년 '카사블랑카', 1944년 '가스등'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둘이 유부남·유부녀라는 게 문제였다. 로셀리니는 의상 디자이너인 둘째 아내와 결혼 13년째에 아이가 둘이었다. 버그먼도 치과의사인 스웨덴 남편과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게다가 버그먼은 로셀리니와 사귄 첫해 덜컥 임신했다. 둘의 불륜과 임신은 유럽과 미국에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다.

▶버그먼·로셀리니는 은막 세계에서 '20세기 5대 스캔들' 순위의 첫 자리를 차지한다. 그 뒤엔 영화감독과 여배우가 짝을 짓는 일이 너무 흔해졌다. 영화 '혹성탈출' 감독 팀 버튼과 여배우 헬레나 보넘 카터, '인디아나 존스'로 맺어진 스티븐 스필버그와 케이트 캡쇼가 떠들썩했다. 일일이 헤아리기 번거로울 정도다. 국내에도 신상옥·최은희, 임권택·채령 같은 원로급 부부에서 젊은 세대로는 장준환·문소리, 김태용·탕웨이까지 여럿이 떠오른다.

▶배우 김민희가 엊그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탔다. 홍상수 감독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영화다. 유부남 영화감독과 관계를 맺었다가 모든 걸 잃고 몸부림치는 여배우가 주인공이다. 국내에는 다음 달 개봉한다. 따로 아내가 있는 홍과 김은 작년 여름부터 실제로 불륜설에 휩싸여 있었다. 영화가 삶을 베낀 셈이다. 가수는 흔히 자신이 부른 노랫말 따라 인생이 흘러간다고들 한다. 홍·김은 굴곡진 삶을 먼저 저질러 놓고 그걸 본떠 영화를 만들었다.

▶그 영화가 국제 무대에서 인정 받았으니 그간 입을 삐죽이던 안티 팬들 반응이 궁금하다. 80년대 베네치아에서 강수연이 '씨받이'로, 2000년대 칸에서 전도연이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결혼 세 번에 애인도 여럿이던 버그먼은 "배우는 오로지 재능과 열정으로 말한다"고 했다. 김민희는 수상 소감에서 "가짜가 아닌 진실된 사랑을 원했다"고 했다. 수상식장에서 홍·김은 나란히 앉아 깍지 낀 손을 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