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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영화가 영화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 기쁩니다."

18일(현지 시각) 열린 독일 베를린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김민희(35)는 이렇게 말했다. 수상 작품은 홍상수(56)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 베를린영화제는 프랑스의 칸,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영화제와 더불어 흔히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 불린다. 미국 영화 중심인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국제 영화제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우리 여배우가 이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1987년 베네치아에서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수상한 지 30년, 2007년 칸에서 전도연이 '밀양'으로 수상한 지 10년 만이다. 시상식 사회자는 "여러분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것"이라며 김민희를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했다. 검은색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김민희는 "누군가에게는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줄,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주신 홍상수 감독님에게 감사드린다.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했다.

◇상영은 매진, 영화는 호평

이 영화는 유부남 영화감독(문성근)을 사랑하게 된 여배우 '영희'(김민희) 이야기. 지난해 여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홍 감독과 김민희 두 사람의 실제 스캔들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어, 공개 이전부터 뒷말이 오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베를린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후했다. 영화전문지 스크린데일리가 경쟁 부문 출품작 중 16편을 대상으로 매긴 전문가 평점에서 둘째로 높은 3.0점(만점 4.0)을 받았다. 가장 높은 평점은 감독상을 받은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희망의 이면(The Other Side of Hope)'의 3.7점.

평론가들은 "형식은 정돈돼 있고, 표현은 개방적이며, 그동안 자기 영화에서 다뤄온 외로움, 후회, 삶과 예술에서 사랑의 가치 등에 대한 접근은 부드럽다"(버라이어티)고 호평을 보냈다. 현지에서 영화를 본 런던아시아영화제 전혜정 집행위원장은 "16일 오전 9시 언론 시사, 오후 4시 공식 상영이 있었는데 메인 상영관인 베를리날레 팔라스 2층까지 관객이 꽉 찰 만큼 관심이 컸다. 자막이 있어도 긴 한국어 대화를 따라가기 쉽지 않을 텐데, 간간이 웃음이 터지는 등 관객 반응도 좋았다"고 전했다.

◇유부남 감독과 여배우 소재

자신의 경험을 영화 속 인물과 이야기에 투영하는 것은 홍상수 고유의 스타일. 스캔들 뒤인 작년 11월 개봉한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도 영화 속 여자(이유영)는 "나 자신에게 수치스러운 짓 한 적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남자(김주혁)는 "남은 삶은 사랑을 얻고 느끼고 매일 사랑하며 살고 싶다"고 되뇐다. 이번 영화에서도 스캔들 소란을 피해 독일 함부르크로 간 여배우 '영희'(김민희)는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나답게 사는 거야"라고 결론 내린다. 영화 속 강릉 장면에서 술자리에 함께한 여배우의 지인들은 "자기들은 그렇게 잔인한 짓들을 해대면서 왜 가만히 놔두지 않고 난리를 치느냐"며 그녀 편을 든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노골적으로 관객의 정서적 추인(追認)을 구하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적 의견도 있다. 인터넷 포털 뉴스 등에도 '지난해 터진 이들의 불륜설에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결과가 돼선 안 된다'는 비판적 댓글이 많았다. 홍 감독은 현지 기자회견에서 "내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모든 감독은 자기 이야기를 영화에 반영한다"며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에도, 현장에서도, 김민희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시상식에 참석한 영화계 한 관계자는 "김민희는 시상식 뒤 기자 회견에 홍 감독의 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질문에 답할 때 홍 감독이 트로피를 들어주고, 보는 눈이 적을 때는 김민희가 홍 감독의 목에 팔을 두르기도 하는 등 무척 다정해보였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3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문창용·전진 감독 다큐 '앙뚜'
제너레이션 섹션 그랑프리

이날 시상식에서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성장영화를 다루는 '제너레이션 K플러스' 부문에서 문창용·전진 감독의 '앙뚜'가 그랑프리를 받았다. 인도 라다크의 어린 '린포체(전생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교의 고승)'가 자신을 돌봐주는 스승과 함께 전생에 머물던 사원을 찾아 티베트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문 감독은 "국가와 정치, 종교, 문화는 다르지만 시련을 극복하려는 어린 소년과 스승의 간절한 사랑이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