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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를 현대적으로 다시 조명한 책들이 잇달아 나왔다. 고운기 한양대 교수가 '스토리텔링-모험의 권유'(현암사)를 낸 데 이어 김문태 서울 디지털대 교수가 '현대인의 삶이 투영된 삼국유사 인문학 즐기기'(페르소나)를 출간했다.

시인이기도 한 고운기 교수는 '삼국유사'에 실린 모험담에 집중한다. 한국과 일본 설화도 비교해 '삼국유사'에 담긴 '동아시아의 기층문화'도 제시했다. 고전문학과 구비문학을 연구해 온 김문태 교수는 '삼국유사'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정치 사회적으로 드러난 사건들을 풀이했다. 두 교수 모두 '삼국유사'의 수많은 설화 중 특히 '수로부인(水路夫人)'을 비중 있게 다뤘다. 설화를 재해석해 현대적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길을 알려준다.

수로부인은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 순정공의 아내였고, 미모가 뛰어났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수로부인'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수로부인이 강릉으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 해변을 지날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철쭉꽃을 꺾어서 노래를 지으며 갖다 바쳤다. ▲수로부인 일행이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을 때, 용이 나타나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자 용이 부인을 받들고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수로부인의 자태가 뛰어나 깊은 산과 연못을 지날 때면,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끌려갔다.

이 설화에서 노인이 부른 노래는 '헌화가(獻花歌)'이고, 뭇사람이 부른 노래는 '해가(海歌)'라고 한다.국문학계에서는 수로부인이 신라 시대 무당의 상징적 인물이었다고 본다. 바닷가에서 열린 공동체의 굿판과 관련이 있다는 것. 고운기 교수는 더 나아가서 수로부인 설화를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해오는 무녀(巫女) 실종 설화와 비교했다. 무녀가 용궁(龍宮)에 갔다가 30년 만에 돌아왔다는 오키나와 설화는 먼 곳에 갔다가 신성한 힘을 지니고 돌아와 신격화된 샤먼의 모험담이다. '수로부인' 설화와 비슷하다는 것. 고 교수는 "용궁 체험이 일상 세계로부터의 이탈이라면 이것을 여성 주인공의 모험 스토리로 확대해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렇게 보면 수로부인은 해신(海神)에게 납치된 여성이 아니라 신성한 세계를 다녀온 모험의 화신(化身)으로 재해석된다. 고 교수는 그 같은 여성의 모험 신화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데 성공한 경우로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꼽았다.

김문태 교수도 '헌화가'는 순수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제의(祭儀) 때 불린 노래였으리라고 본다. 강원도 해안지역이 가뭄에 시달리자 왕실에서 무당을 보내 기우제를 벌였으리라는 것. 노인이 수로부인의 남편이 옆에 있는데 버젓이 부인에게 꽃을 바쳤다는 것은 제의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철쭉꽃을 양으로 보고, 수로부인을 음으로 삼아 음양 조화를 기원하면서 비를 부른 노래였던 것이다.

수로부인이 용왕에게 납치되자 사람들이 부른 '해가'는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고 시작한다. 그전부터 불린 주술적 노래 '구지가(龜旨歌)'의 변형이다. 이 노래를 듣고 용이 수로부인을 되돌려줬다는 것은 마침내 비가 내렸음을 의미한다.

기고자 : 박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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