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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특검보다 더 무서운 규제 광풍"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일 서울 남대문 대한상의에서 열린 '유일호 경제부총리 초청 CEO 조찬간담회'에서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590개 법안이 발의됐는데, 그중 407개(69%)가 규제 강화 법안"이라며 "이런 규제 법안들이 정치적 쓰나미에 휩쓸리듯 한꺼번에 통과되면 기업들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정치적 이슈에 대해 발언을 자제하던 박 회장이 이례적으로 공개 비판에 나선 데는 최근 '반기업 정서'를 타고 각종 규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특히 상법 개정안이 교각살우(矯角殺牛·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잡는다는 뜻)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법안 중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도 많다"고 말했다. 지금 국회에서 심의 중인 상법 개정안은 이사 선임 때 의결권을 한곳에 몰아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집중투표제'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해 감사위원을 따로 뽑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을 담고 있다. 야당은 재벌 총수의 경영 독주를 막기 위한 경제민주화 법안이라며 2월 국회에서 처리할 방침을 밝혔다.
무역협회도 이날 "상법개정안과 관련해 무역업계 최고경영자(CEO) 283명 가운데 143명(50.5%)이 반대를, 90명(31.8%)이 좀 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무협 관계자는 "상법개정안이 애초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좋은 취지와 달리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 '선의의 역설'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법안은 한번 만들어지면 되돌리기 힘든 특성이 있어, 분위기에 휩쓸려 규제 법안이 대거 통과된다면 가뜩이나 활력을 잃고 있는 산업계 전반이 꽁꽁 얼어붙을 수 있다고 염려했다. 한 경제인은 "재계는 검찰 수사에다가 점점 높아지는 반(反)기업 정서, 여기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규제 입법에 휩쓸리고 있어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말했다.
◇정부 "경영 방어권도 함께 도입하겠다"
재계의 우려에 대해 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이날 대한상의 조찬간담회에서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규제 법안이 자꾸 나오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국회 입법 과정에서 문제점을 줄일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시피한 경영방어권 제도도 같이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가 기업 지배 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경영권 방어가 어렵게 된다"며 "공격과 방어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기재부가 검토 중인 경영방어권 제도는 포이즌필(poison pill)과 차등의결권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이즌필은 우호적인 주주들에게 싼값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줘 적대적인 인수합병을 막는 방법이다. 차등의결권제는 의결권을 더 많이 갖는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두루 활용되고 있는 제도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에서 이런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발의됐는데, 이를 야당이 낸 상법개정안과 함께 심사하도록 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포이즌필, 차등의결권제 도입만으로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해외 헤지펀드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며 "정부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에서도 규제 입법 부작용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 20대 국회가 발의한 규제 법안들 / 정부가 검토 중인 경영방어권 제도 기고자 : 신은진 최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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