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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그들이 내세운 '국정(國定) 반대' 논리는 크게 두 가지였다. 획일적 강요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따라서 교육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시민이 이에 공감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부의 국정·검정 혼용(混用) 방침으로 교과서는 학교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지게 됐다. 새 교과서는 좌편향이 지배하는 역사 교육 현장에 오히려 다양성을 불어넣기 위한 최소한의 발판이었다. 혼용이 실시될 경우 7~8종의 역사 교과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것마저 땅에 묻기 위해 집단 힘으로 강요와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남을 비판하면서 내세웠던 논리를 자기들 목적을 위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뒤집는 건 자가당착이다.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새 교과서의 싹을 잘라버리면 검정은 이긴 건가. 새 교과서는 인터넷에 공개돼 거의 발가벗기듯 검증을 받았다. 완성본이 나온 2월 초 역사교육연대회의란 단체는 또다시 "653개의 오류를 발견했다"며 그중 29개를 발표했다. 몇 개를 빼면 문장의 소홀함에서 비롯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머진 공개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새 교과서는 오류투성이란 걸 부풀리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당연히 교과서에는 사소한 잘못도 있어선 안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 문제와 갈등투성이 나라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북한의 독재와 3대 세습, 참담한 인민 생활상에 대해 제대로 서술 않는 것보다 더 큰 오류가 있는가. 검정 교과서들도 내년 개편을 앞두고 인터넷에 내용을 공개해 검증을 받아보면 좋을 것이다.
경북의 한 고등학교는 전교조·민노총 회원들로부터 "곧 정권이 교체될 덴데 왜 연구학교를 신청하느냐"고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좌파 진영에선 국정화가 역사학과 역사 교육을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해 왔다. 교과서를 정권 교체와 결부시키는 것이야말로 국정 반대의 본질이 정치 운동임을 실토하는 것이다. 야당은 검정 교과서의 기득권을 보장해 주고 검정 교과서는 좌편향 사관(史觀)으로 야당에 미래의 유권자를 길러내 주는 품앗이를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학교의 교과서 채택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쪽은 전교조라고 한다. 출판사는 전교조의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 수밖에 없다. 기울어진 역사 교육을 바로잡는 일은 정치권과 전교조·출판사·좌파 필자들의 공생 구조를 깨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집단의 힘이 작용하기는 교수와 학자들이라고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국정 반대 대열에서 개인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고 ○○학회, ○○연구회 같은 단체의 이름이 나부꼈다. 이들 단체가 사전에 구성원 개개인의 의견을 얼마나 물었는지 의문이다. 이름 올리기를 거부할 경우 따돌림을 각오해야 하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나와 다르면 악(惡)이라는 독선, 집단의 힘이면 뭐든 할 수 있는 분위기, 내가 옳으면 남에게 강요해도 된다는 발상이 지배하는 쪽으로 사회가 흘러가는 것 아닌가. 기고자 : 김태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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