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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 오락 프로그램에 유명 방송인이 혼자 일본을 여행하는 장면이 나왔다. 일본어도 모르는데 가게에 들어가 곰고기 카레, 방어 양념구이 통조림 같은 걸 겉포장 보고 척척 사먹었다. 혼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스마트폰에 내려받은 네이버 번역 서비스 덕분이었다. 이 서비스는 우리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짱이야' '쩐다' '얼짱' 같은 유행어를 입력해도 일본어 번역이 나올 정도다.

▶엊그제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가 '인간 대 인공지능(AI)의 번역 대결'을 개최했다. 구글·네이버·시스트란이 각각 내놓은 세 종류 인공지능 번역기와 전문 번역사 4명의 실력을 겨루는 이벤트였다. 결과는 인간의 압승이었다. 전문 번역사들은 30점 만점에 24~25점을, 인공지능은 9~15점을 받았다. 번역가는 '휴대전화 앱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표현한 문장을 인공지능은 '휴대전화 앱 산업이 폭발했다'는 식으로 맥락을 깊이있게 파악하지 못해 어색하게 번역했다.

▶지난해 이세돌 9단을 꺾은 인공지능 바둑 알파고는 올해 위력이 더 세져 한국과 중국 고수들에 60연승을 거뒀다. 번역 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이 아직 인간을 못 따라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도 인공지능의 번역 능력은 무섭게 늘고 있다. 최근의 인공신경망 번역(NMT) 기술은 과거 10년간 통용되던 통계 기반 번역(SMT)에 비해 품질이 두 배 이상 좋아졌다. IT 업계에서는 전문 번역가 실력을 100점 만점에 90~95점이라고 치면 과거 통계 기반 번역은 30점대, 업그레이드된 인공신경망 번역은 60점대라고 말한다.

▶2009년 미국 정부는 '미국 혁신 전략'이라는 과학 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과학기술로 21세기의 거대한 도전을 헤쳐가자는 목표다. 그 속에는 '자동적이면서 고도로 정확하며, 실시간으로 번역이 가능한 도구를 개발해 국제 교역과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적극 허물자'는 제안도 있다. 현재 미국의 구글, 중국의 바이두, 한국의 네이버 같은 각국의 대표 인터넷 업체들이 인공지능 번역 서비스에 바짝 관심을 쏟고 있다. 구글의 경우 번역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무려 103개 언어의 번역이 가능하다.

▶구약성서 '창세기' 11장은 바벨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늘에 닿을 만큼 높게 탑을 쌓으려는 인간의 오만에 분노한 신이 원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러 언어로 쪼개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해서 탑 공사를 막았다.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 번역을 활용해 그 신의 분노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기고자 : 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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