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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놀고 있는 외손(外孫)은 외손 같아서 얼른 두 손을 갖다 받치게 된다. 아껴야 한다. 딸이 낳은 딸. 시인 하종오(63)씨가 외손녀의 육아기를 엮은 시집 '웃음과 울음의 순서'를 냈다. "지난해 1월 27일 태어났어요. 외손이 자라난 1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데뷔 40년이 넘은 고참 시인이 오롯이 육아시로만 한 권을 채운 시집은 여태껏 한국 시단에 없던 기획이다. "저도 1남1녀를 키웠지만, 젊을 적엔 이런 영감 자체가 안 떠올랐어요. 죽음에 한발 다가서고 보니 갓 태어난 아이에게서 내 옛날이 보이더군요." 매일 딸이 사는 서울 방화동까지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걸리는 길을 갔다. 첫 손주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등을 쓸어주다 저물어 강화도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 "아이의 표현법은 웃음과 울음밖에 없지요. 그것이 제목이에요. 무엇이 우선일 수 없고, 여기에 굉장한 사유가 들어 있는 것도 아녜요. 그저 깨끗한 하나의 감정일 따름이죠."

오랜만에 아기를 안아봤다. 그것은 놀라운 체험이었다. "아기는 안기면서도 안는 사람에 따라서 반응이 전부 다르더군요." 이 감각은 연작시 '아기를 안는 법1·2·3'에 담겼다. '똑같은 자세로 안는데도 아기는/ 딸이 안으면 잠자고/ 내가 안으면 논다.'(1) '나는 말다툼하거나 욕지거리하고 있을 때/ 들숨날숨이 빨라지지만/ 외손을 안고 있으면 잔잔해진다.'(3) "퇴고도 거의 안 했어요. 그저 일기 쓰듯이 그날 본 걸 그날 옮겼어요."

시는 차분하다. 격정에 찬 정치·사회적 리얼리즘 시를 쓰던 시인의 문체는 10년 전부터 관조를 향해 가라앉고 있다. "절규와 부르짖음은 외면당하는 현실이다. 현실이 변했으니 변화된 시선으로 현실을 봐야 리얼리즘"이라 말했다. 그는 이번 시집 후기에 '젊어서 이런 시를 쓸 줄 알았더라면 나는 행간이 깊고 넓고 아늑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아이를 헤아릴 수 있는 눈과 마음이야말로 최고의 양식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시집이 31번째다. 지난 5년 새 무려 9권의 시집을 쏟아냈다. 2013년부터는 다니던 출판사도 그만두고 집에서 시만 쓰고 있다. "하루에 4편씩 쓸 때도 있다"고 했다. "현실이 다단하니 할 말이 많지요. 쓸 게 너무 많은데 언어가 못 쫓아가요." 이미 시집 13권 분량 700~800편의 시가 이번 시집을 낸 '도서출판b'에 넘어가 있다. 후배 조기조 시인이 하는 출판사다. "더는 시를 못 쓰거나 죽게 되면 알아서 내달라고 부탁해놨어요. 혹시 출판사가 망하면 그냥 인터넷에 다 올리라고도요."

외손의 이름은 딸이 지었다. 하언(河言). 그는 외손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 "훗날 커서 글 쓰는 직업을 갖게 되면 할아버지처럼 육아의 소감을 글로 옮겨봤으면 해요.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할 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번 시집은 난산이었다. 출판사의 부도 위기로 판촉이 제대로 안 돼 묻힐 뻔했다. 그러나 결국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