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일본 홋카이도현 오비히로 오벌) 셋째 날 1만m와 팀추월(3200m)에서 이승훈(29·대한항공)이 동시에 금메달을 따내자 빙상인들도 놀랐다. 이승훈은 불과 열흘 전 정강이가 찢어지는 부상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조차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인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팀추월(10일)에서 스텝이 엉켜 넘어지며 8바늘을 꿰맸다.

주변에선 "진짜 중요한 건 평창올림픽이다. 부담 갖지 말고 몸 상태에 맞춰서 출전을 결정하라"고 했지만 그는 예정대로 아시안게임에 나섰다. 매스스타트 세계 랭킹 1위인 이승훈이 핵심 주종목이 아닌 팀추월과 1만m, 5000m에 모두 출전하는 '중노동'을 감수한 건 '맏형의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승훈 매니지먼트사 브라보앤뉴 관계자는 "대표팀 최고참인 이승훈은 함께 팀추월을 준비한 후배들에게 피해 주기를 원하지 않았다"며 "한국 선수단의 목표(금메달 15개 이상, 종합 2위)에도 보탬이 되겠다는 의지가 커 팀추월뿐 아니라 1만m에도 나섰다"고 전했다.

20일 첫 출전 종목인 남자 5000m에서 금메달(6분24초32)을 목에 건 그는 22일 3시간 간격으로 벌어진 1만m와 팀추월(이승훈·주형준·김민석)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올랐다. 이승훈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계아시안게임 2회 연속 3관왕이자 최다 금메달(6개)을 딴 주인공이 됐다. 그는 1만m에서 올 시즌 개인 최고 기록(13분18초56)을, 팀추월에선 아시아 기록(3분44초32)을 세우는 저력을 발휘했다.

1만m를 질주한 뒤 단 180분을 쉬고 다시 팀추월에 나서는 건 엄청난 체력적 부담을 안긴다. 전문가들은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완주하고 다시 하프 코스를 뛰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마라톤보다 거리는 짧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최고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데다 강한 원심력(원 밖으로 나아가려는 힘)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체력 소모가 크다는 것이다. 보통 1만m를 완주하면 몸무게가 2~3㎏ 빠진다. 하지만 이승훈은 1만m를 끝낸 직후 "경기를 소화할수록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까지 하며 여유를 보였다. 곧이어 나선 팀추월 때는 마지막 바퀴에서 더 속도를 올려 '강철 체력'을 과시했다.

김관규(50)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감독은 "1만m를 완주하면 서 있기조차 힘들 만큼 체력이 고갈된다"며 "정강이 부상까지 있어 웬만한 선수라면 몸을 사렸을 텐데 이승훈은 자기 체력에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쇼트트랙 DNA'가 장거리 종목에도 유리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1999 강원 동계아시안게임 1만m 동메달리스트인 문준(35·스포츠토토)은 "쇼트트랙에서 코너 워크를 단련한 이승훈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곡선 구간을 물 흐르듯 질주한다"며 "다른 선수들이 버거워하는 코너에서 체력을 비축했기에 장거리 두 종목을 무리 없이 소화한 것 같다"고 했다. 이승훈은 쇼트트랙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스물한 살 때인 2009년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이승훈은 23일 열리는 남자 매스스타트에 출전해 한국 선수 사상 첫 4관왕에 도전한다.

기고자 : 김승재
본문자수 : 164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