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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마지막 날(23일) 열린 여자 매스스타트. 이 종목 세계 랭킹 1위인 김보름(24)의 금메달이 유력했지만 출발 총성이 울리고 잠시 후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다카기 미호(23)와 사토 아야노(21)가 두 바퀴 만에 갑자기 속도를 올리며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400m 트랙을 16바퀴 돌아야 하는 장거리에서 초반부터 속력을 높이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통상 이런 상황이라면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는 1·2위 선수를 뒤쫓아가 경합하며 이들의 체력을 빼고 역전을 노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다카기와 사토는 계속 차이를 벌려 다른 선수들을 반 바퀴나 앞섰고, 레이스 종반에는 한 바퀴 가까이 앞서서 하위권 선수들의 꼬리를 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미 역전은 불가능한 상황. 모든 것이 어이없이 끝나 버렸다.

기록이 아니라 순위를 다투는 매스스타트에서는 간발의 차로 순위가 결정되는데, 이날 김보름(8분47초46)은 1위 다카기(8분21초81)에게 25초65나 뒤진 동메달에 그쳤다.

경기를 지켜본 빙상인들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가진 김보름이 일본의 '기습작전'에 넋을 잃고 당했다"고 평가했다. 보통 김보름은 중위권에 머물다가 막판에 스퍼트를 올려 역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일본이 이를 간파하고 초반부터 치고 나가 김보름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벌린 것이다. 기량에서 앞서는 김보름을 겨냥한 일본의 '필살기'가 통한 셈이다.

일본 측이 '2인 레이스'를 펼친 데도 이유가 있었다. 혼자서 치고 나갔다면 바람의 저항 때문에 후반 들어 체력이 바닥났을 테지만 다카기와 사토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1·2위 자리를 바꿔가면서 서로에게 '바람막이' 역할을 해 막판까지 체력을 아꼈다.

그렇다면 일본 선수들이 치고 달리는 사이 나머지 한국·중국·태국·카자흐스탄 선수 9명은 왜 아무도 추격전을 벌이지 않았을까. 스피드스케이팅 지도자들은 '누군가가 따라나가겠지… 지금 나서면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재봉 스포츠토토 빙상단 코치는 "앞서 질주하는 일본의 두 선수를 견제하려고 뒤늦게 추격하면 자기 페이스를 잃게 된다"며 "선수들 모두가 누군가 '자폭 견제'해 주기를 기대하다가 다 같이 망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강석 KBS 해설위원은 중계 내내 "앞선 일본 두 선수와 간격을 좁혀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한국 코칭 스태프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의 변칙에 대비한 '플랜B'를 세웠어야 하는데, 아무런 전략도 없이 경기에 임했다. 김보름은 경기 직후 '한국팀 작전은 뭐였느냐'는 질문에 "작전은 따로 없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각자 플레이했다"고 밝혔다. 빙상 지도자들은 "평창올림픽 때도 이런 상황은 얼마든 생길 수 있다"며 "세부 작전을 세워서 쇼트트랙처럼 팀플레이를 구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보름은 이번 대회를 금 1개(5000m), 은 2개(3000m·팀추월)와 매스스타트 동메달로 마무리했다. 기고자 : 김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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