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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장의 사진을 보고 내가 펑펑 운 사건이 있다. 사진 속에는 두 팔을 내린 채 중심을 잡고 서서 턴 아웃된 상태로 오른쪽 다리를 높게 추켜올린 백발 노인이 보인다. 저 자세가 얼마나 오랜 시간 훈련해야 하는 것인지, 발레를 4년째 하고 있는 나는 너무 잘 안다. 사진 속 주인공은 1941년생 트와일러 사프. 그녀는 40년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와 런던로열발레단 등 세계적인 발레단의 안무를 맡았고, 우리에게는 영화 '아마데우스'와 '백야' 등의 안무로 더 친숙하다. 사람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시킨 사람들, 즉 '워너비'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뉴욕 지성계의 여왕 수전 손태그과 트와일러 사프가 그렇다. 우리 시대 위대한 창조자들의 생활 습관을 모은 책 '리추얼'에서 트와일러 사프의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거의 감전된 느낌이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연습복을 입고 레그 워머를 신고 후드티를 걸치고 모자를 쓴다. 그리고는 집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러 세우고 운전사에게 91번가와 퍼스트 애비뉴 모퉁이에 있는 펌핑 아이언 체육관으로 가자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 내 의식은 매일 아침 체육관에서 하는 스트레칭과 웨이트트레이닝이 아니다. 내 의식은 바로 택시이다.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는 순간, 내 의식은 끝난다."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영화처럼 마지막 문장이 선명히 펼쳐졌다. 1월 뉴욕의 극심한 추위 속을 뚫고 택시를 부르는 70대 노인, 그녀의 하얀 입김과 푸른 새벽의 분위기 같은 것들 말이다. 메이슨 커리의 책 '리추얼'은 이처럼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크리에이터의 일상을 놀라울 만큼 구체적으로 복원해 보여준다. 이 책은 꼭 '파리 리뷰'에 실렸던 작가들의 다양한 인터뷰에서 '작품론'을 제외한 '생활론'을 옮겨놓은 버전 같다.

가령,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운동이라곤 캔버스 앞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게 전부였다. 그는 엄청난 양의 마늘을 먹었고 달걀노른자와 디저트, 커피를 멀리하는 독특한 식습관을 고수하며 하루 여섯 병의 포도주를 마셨다. 맙소사. 여섯 병이라니! 물론 사르트르는 점심시간에 1L의 포도주를 마셨고, 두 보루가 넘는 담배를 피웠다. 하루에 50잔의 커피를 마신 발자크는 어떤가. 사르트르에 대해서라면 한 번 더 놀랄 일이 있다. 그가 저녁과 함께 술 1L를 더 마셨으니까 말이다. 매그레 반장 시리즈로 잘 알려진 조르주 심농이 쓴 책은 모두 425권이었는데, 그는 성적 에너지가 창작의 불쏘시개라 믿었으며 잠자리를 한 여성의 숫자가 1만명이 넘는다고 단언했다. 물론 그의 두 번째 아내가 "기껏해야 1200명 정도일 것"이라 잘라 말하긴 했지만. 심농은 작품 하나를 끝내기 위해선 1.5L의 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기 전과 끝낸 후에 체중을 달았다. 아이고, 맙소사. 대체 1.5L란 어디에 근거한 수치일까. 직접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이쯤되면 예술가들이란 방탕하기 그지없는 외계인 같단 느낌이 들 것이다. 무질서가 영감의 원천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는 칸트나 헨리 밀러처럼 규칙적인 습관이 야망의 증거라는 걸 증명한 작가들이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칸트는, 성격은 긴 세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설파하며 성격은 마흔 살에 완성된다고 믿었다(이 위대한 철학자가 잿빛 코트를 입고 스페인 지팡이를 손에 쥐고 집 밖으로 나오면, 이웃들이 정확히 3시 30분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스티븐 킹은 매일 8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2000단어씩 썼고, 조르주 상드는 성인이 된 후에 매일 밤 20페이지 이상 원고를 썼다.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작업한 후, 정확히 9시에 잠들었는데, 그가 낮잠용으로 듣는 음악은 요요마와 클리블랜드 콰르텟의 시디였다. 어쩐지 그 음악을 들으면 바로 잠이 든다는 게 이유였다(내게도 그런 마법의 음악이 있다면 대작을 쓸 텐데). 이 책에는 작가의 아내나 연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보부아르의 연인이었던 클로드 란즈만은 그녀와 파리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한 첫날을 이렇게 묘사했다.

"보부아르는 벌떡 일어나 옷을 입고는 작업대로 갔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보부아르는 내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그 후, 그녀는 사르트르를 만나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언제나 따로따로 앉았고, 보부아르는 그날 사르트르가 쓴 글을 논평했다… 파티도 없었고 환영회도 없었다. 부르주아적 가치관도 없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멀리했다. 오로지 본질적인 것만 있었다. 반듯하게 정돈된 듯한 삶이었고, 보부아르가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짜인 단순화된 삶이었다."

사실 내 생활 역시 대체로 규칙적이며 꽤 단순한 편이다. 장편소설처럼 길고 복잡한 원고를 써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몇 시에 눈을 뜨건 일어나자마자 글을 쓴다. 오후에는 아몬드, 삶은 달걀, 바나나를, 진하게 내린 커피 한 잔과 먹는다(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 원고를 쓰면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5시 전에는(3-4시 이전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일을 마치고 짧게라도 반드시 낮잠을 잔다. 7시에는 공원을 가로질러 발레 클래스에 간다. 발레 클래스가 끝나면 손상된 근육을 달래주는 의미에서 바나나와 삶은 달걀을 먹는다. 밤에는 침대에 앉아 원할 때까지 책을 읽는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3년에 걸쳐 생긴 습관들이다. 매일 반복하는 의식, '리추얼'을 믿는 나는 여전히 새로운 습관 만들기를 고안하고 개발 중이다.

영화감독 우디 앨런은 순간적인 변화가 정신 에너지의 폭발을 자극한다는 걸 알았다. 그는 같은 공간 안에서도 위층 아래층으로 자주 이동했다. 그는 작업을 중단하고 샤워를 하는 것도 생각의 전환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걸 알았다. 매일 오후 4시에 베란다에서 샌들을 신고 글을 쓰라고 충고한 니컬슨 베이커 같은 작가도 있는데, 그녀는 책을 쓸 때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다. 물론 7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식당에서 동일한 메뉴만 먹은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도 있다. 그는 은잔에 설탕을 듬뿍 넣은 초코 셰이크와 설탕범벅인 일곱 잔의 커피를 마셨다. 당분은 그에게 건강 악화가 아닌 아이디어를 선물했다. 그것은 건강염려증으로 채소와 어류 광천수와 라이스 푸딩만 먹겠다고 선언한 피카소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리추얼에는 정답이 없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발사를 불러 콧수염을 다듬은 프로이트도 있고, 봉두난발의 멍한 얼굴로 프린스턴대 캠퍼스를 걷던 아인슈타인도 있다. 그러므로 당신만의 리추얼을 만들라는 게 결국 이 책의 메시지다. 사실 나는 몇 시간 전만 해도, 이 책이 아니라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대한 가슴 미어지게 슬프고 심각한 원고를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을 덮자마자 계획을 바꾸었다. 이 책이 너무나 재밌었기 때문이다.

리추얼—메이슨 커리의 책

백영옥·소설가 기고자 : 백영옥
본문자수 : 346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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