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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옳고 그름

    양지호

    발행일 : 2017.02.25 / Books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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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슈아 그린 지음|최호영 옮김|시공사|624쪽|2만7000원

    '도덕이라는 망상'. '신이라는 망상'(God Delusion·국내 번역명은 '만들어진 신')을 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이 책을 썼다면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 것 같다. 저자는 보편타당한 도덕률은 없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덕(德)은 (그리스라는) 부족(部族)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칸트가 정언명령을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도덕법칙은 '고도를 기다리며'만큼이나 부조리하다"고 한다. 조슈아 그린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도발적 주장이다.

    그린 교수는 '도덕'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집단 내 협력을 가능하게 했던 '도덕'이 어떻게 집단 간 갈등을 낳는지 탐구한다. 이를 위해 미국 생물학자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 개념을 확장한다. 한 부족의 공유 목초지에서 양치기들이 자신의 양떼만 많이 먹이려 든다면 목초지는 곧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이럴 경우 부족 내에서 원칙을 만들어 협력 방안을 찾아낸다. 이 방안은 부족 안에서 '상식적 도덕'이 된다. 문제는 다른 상식을 가진 부족이 등장했을 때 생긴다. 자본주의적 양치기 마을과 공산주의적 양치기 마을이 한 목초지에서 경쟁할 때, 이들은 다른 상식(도덕)을 가졌기 때문에 대립한다. 바꿔말하면 도덕은 부족마다 고유하다. 보편타당한 율법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갈수록 이질적인 집단과 만날 일이 늘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와 '그들'의 소통은 필수. 저자는 카메라에서 힌트를 얻는다. 인간의 뇌는 자동모드와 수동모드를 함께 지닌 카메라와 같다는 것. 자동모드는 '인물사진' '풍경사진' '접사' 등 전형적인 촬영 상황에 맞게 최적화돼 있다. 사용자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카메라가 감도, 조리개, 노출 등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수동모드는 반대. 사용자가 일일이 설정 값을 입력해야 최적의 사진을 찍는다. 대신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인간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대부분 자동모드를 쓴다. 그런데 이 자동모드에는 결함이 있다.

    저자는 실험심리학의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 실험 자료를 제시한다. 통제 불능의 전차가 다섯 명의 인부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당신은 전차와 인부 사이의 중간쯤에서 선로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 있다. 그리고 당신 옆에는 커다란 등짐을 진 인부 한 명이 서 있다. 다섯 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부를 선로로 떠밀어 그의 몸과 등짐으로 전차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인부를 직접 밀어서 떨어 트려야 할 때 사람들은 결정을 주저하지만(1명이 살아남는다) 다른 기계적 장치를 동원해 인부를 떨어트릴 수 있다면 쉽게 그렇게 한다.(5명을 구한다) 자동모드로는 1명의 목숨밖에 구하지 못하지만 수동모드로는 5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신의 뜻을 알 수도 없고, 논리적으로 도덕적인 진리를 연역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실험심리학에서 도덕적 토대를 찾는다. 그리고 트롤리 사고(思考)실험 결과 인간의 '수동모드'는 소속 집단에 상관없이 공리주의적 선택을 선호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우리'와 '그들'의 도덕체계는 전혀 다르지만 행복의 총합을 늘리는 데는 뜻을 같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롤리 딜레마에는 1명을 죽인 뒤 살아남은 5명이 모두 살인자라는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이런 비판에 직접 답하는 대신 "인간에 내재한 자동적인 정서적 장치는 이기심으로 살인하는 것과 100만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의 차이를 보지 못한다"고 숫자를 부풀린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전공 분야와 비전공 분야를 종횡무진 오가며 가능성을 찾는다. 실험심리학자인 그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존 롤스 같은 철학사의 대가(大家)를 부정하는 부분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수동모드'의 가치를 알려준다는 미덕이 있다. 자동모드라는 본능적 직관에는 한계가 있다. 카메라는 사진가가 그때그때 설정을 바꿔줄 수 있지만, 인간의 도덕적 판단을 도와주는 '신의 목소리'는 없다. 개인이 의식적으로 자동모드와 수동모드를 오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마트폰 속 카메라 앱에서 수동모드로 진입해보자. 사진 한 장 찍기 위해서 얼마나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가 보인다. 트롤리 딜레마에서 보듯 자동모드가 직감에 따라 한 사람을 살릴 때 수동모드는 추론을 통해 다섯 사람을 구한다. 때로는 번거롭고 사용법을 익히기 어렵더라도 그 과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원제는 도덕적인 부족들(Moral Tribes). 부족마다 도덕관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를 뛰어넘는 고차도덕(metamorality), 즉 실용적인 공리주의로 갈등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고자 : 양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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