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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物相] 말레이시아 재발견

    박정훈

    발행일 : 2017.02.25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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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전 동아시아에 외환 위기 폭풍이 불어닥쳤을 때 한국은 IMF(국제통화기금) 체제를 받아들여 혹독한 계절을 보냈다. 말레이시아는 정반대였다. 구조조정은커녕 자본시장 문을 걸어 잠그고 IMF 권고와 거꾸로 갔다. 무모하다는 걱정이 많았지만 말레이시아는 외환 위기 방어에 훌륭하게 성공했다. 국가 자존심도 세우고 위기도 막아 환란(換亂) 사태의 최대 수혜국이 됐다. 간단치 않은 국가 저력이었다.

    ▶당시 미국식 자본주의에 독설을 퍼부으며 투기 자본과의 전쟁을 지휘한 것이 마하티르 총리였다. 영국식 교육을 받은 그는 20여년간 총리를 지내며 말레이시아의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말레이시아뿐 아니다. 동남아 국가의 지도층은 대체로 선진국을 제대로 배운 엘리트이다. 싱가포르의 국부(國父) 리콴유는 런던정경대학을 거쳤고, 그의 아들 리셴룽 현 총리도 케임브리지를 나왔다. 과거엔 영국 유학파가 주류였지만 요즘은 미국·호주 유학도 많이 간다고 한다.

    ▶영국·네덜란드 등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에는 유럽식 엘리트주의 전통이 여전하다. 인도네시아 주재 대사를 지낸 한 외교관은 "동남아 엘리트 수준은 우리보다 한 수 위"라고 했다. 그들과 대화해보면 국제 정세를 보는 식견과 해박한 지식에 놀란다는 것이다. 특히 미·중 양극 체제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취하면서 다(多)차원으로 대응하는 동남아식 외교술은 국제정치학의 연구 대상이다. 국가 발전은 늦었지만 이런 엘리트 계층이 나라를 움직여가는 것이 사실이다.

    ▶김정남 독살 사건에 접근해가는 말레이시아 경찰의 능력과 태도가 눈길을 끌고 있다. 처음엔 제대로 수사가 될까 걱정도 많았지만 차근차근 증거를 찾아내고 용의자를 식별해 결국 북한 소행임을 밝히는 데 성공했다. 특히 경찰청장의 깔끔한 브리핑이 화제에 올랐다. 끊을 것은 분명하게 끊고 밝힐 것은 밝혔다. 외신기자들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국내 인터넷에서도 "한국 경찰보다 낫다"는 반응이 많이 나온다. 말레이시아 재발견, 동남아 재인식이다.

    ▶1970년대 초까지 동남아 국가들은 우리보다 앞서갔다. 태국에 유학 가고,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을 받는 것이 영예로 꼽혔다. 경제가 역전되면서 언제부턴가 동남아를 한 수 아래로 보는 풍조가 생겨났다. 동남아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어글리 코리안 관광으로 물의 빚기 일쑤다. 반면 일본은 아세안 중시 전략을 버리지 않고 동남아에 확실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그 힘이 일본 언론의 이번 사건 취재에서도 드러났다. 구미(歐美)와 중·일에 편중된 세계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고자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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