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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라종일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김정남 암살'에서 '아웅산 테러'를 떠올리다
    김시덕

    발행일 : 2017.02.25 / Books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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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오전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북한 첩보원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암살되었다. 내가 이 소식을 접한 것은 14일 늦은 밤 모처에서 연구회를 마친 직후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일 오후 현재 김정남 암살을 실행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인이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주범으로 보이는 네 명은 이미 북한으로 돌아갔다는 보도도 들린다.

    속속 전해지는 암살 관련 속보를 접하면서 라종일 전 영국 대사의 책 두 권을 책장에서 꺼낸다. 2013년에 출간된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창비 刊), 그리고 2016년에 출간된 '장성택의 길-신정(神政)의 불온한 경계인'(알마 刊). 김정은을 대체할 수 있는, 그리하여 북한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인물이 살해되었다는 점에서는 장성택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1983년 10월 9일에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을 일으키고는 체포돼 4반세기 후인 2008년 5월 18일 오후 4시 30분에 버마의 감옥에서 사망한 강민철이라는 사람에게 더 관심이 간다. 당시 남측 대통령 암살을 시도했던 북한 공작원 3인의 테러는 실패했다. 1명은 도주하다 사살됐고 생포된 2명 중 1명은 사형, 강민철은 무기징역을 받았다.

    강민철이 21세기까지 살아 있었다는 사실조차 대부분의 한국 시민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번 암살과 마찬가지로 버마 아웅산 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북한 정권 치하에서는 아마도 강민철이라는 이름 자체가 지워져 있을 것 같다. 국가란, 정치란 이렇게 늘 개인에게 차갑다.

    라종일은 아웅산 테러 당시 북한의 공작이 테러 자체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요원들의 탈출 방법이나 체포될 경우의 대응법, 그리고 이들을 구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고 적는다. 실패를 상정하는 자체가 문제이며, 실패하면 요원들이 자폭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이번 김정남 암살에서는 적어도 주범들에 대해서는 탈출 방법이 준비되어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수족으로 움직였을 사람들은 방치되어 공항을 배회하다가 체포됐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옥사한 강민철의 일생이 현재 말레이시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이들의 운명을 예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기고자 : 김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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