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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배려는 청년실업의 해법 아니다

    윤희숙

    발행일 : 2017.02.25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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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가 가는 길을 물을 때 먼저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청년실업 대처 방안이다. 이 질문을 피하고서는 국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청년실업은 우리 시대의 주요 고민거리이다. 문재인 후보는 공공 부문 일자리를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안희정·정운찬 후보는 경제가 잘 돌아가게 해서 시장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게 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원칙적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안철수 후보는 정부 지원으로 중소기업 임금을 대기업의 80% 수준으로 보전함으로써 청년실업을 줄이겠다고 한다. 정부 지원으로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는 문 후보와 동색(同色)인데,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의 인건비를 대폭 지원해 연명을 돕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청년에게 당장의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비해 정부는 지난 23일 일반계 비(非)진학 청소년에게도 직업훈련을 시키겠다는 계획을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밀었다. 대학 중퇴자나 특성화고등학교 졸업생들에 비해 일반계 고졸자들이 취업에 시간도 더 걸리며 보수도 열악하다는 통계와 함께였다.

    모든 대책이 그렇듯이 이들은 청년실업에 대한 나름의 원인 진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공 부문 일자리 확충은 공공 부문이 협소해 청년실업이 심화했다는 판단에 기반을 뒀을 것이고, 안희정·정운찬 후보는 경제가 가라앉아 노동 수요가 부족한 것을 원인으로 꼽은 셈이다. 반면 정부안은 필요한 숙련을 갖추지 못한 청년이 많아 노동 공급상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청년실업 원인과 대안에 대한 주요 입장들이 제출된 셈이다. 이 중 노동 수요와 공급 측면의 문제 제기는 어느덧 고질병이 되어버린 우리 경제의 환부에 대한 적절한 지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제의 핵심이 의도적으로 누락됐다. 이들 모두 일자리 부족만 지적할 뿐 왜 실업이 청년에게 집중되는지, 다시 말해서 일자리 배분의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일자리 배분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노동시장 제도의 문제이다. 예전 고도성장기에는 일자리에 비해 사람이 희소했기 때문에 기업이 숙련 인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이직(移職)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대표적인 장치가 연공급 임금 체계이다. 연공급의 핵심은 취업 초기에는 근로자 개인의 생산성보다 임금을 낮게 책정하는 대신 이를 훗날로 이연시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이직이 불리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니 한번 취업하면 근로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설계된 셈이다.

    문제는 고성장기에 내장된 이런 제도들이 지금은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저성장으로 일자리가 부족한데, 그나마 있는 일자리에서는 기존 취업자들이 비키지 않도록 시장이 제도화되어 있으니 청년 세대는 노동시장 입구에서 진입이 막히는 구조이다. 노동시장 제도가 경제 환경 변화에 발맞춰 변화하지 않는 것이 청년실업의 핵심 원인이니 노동 개혁 과제를 빼고 청년실업을 논하는 것은 팥소 빠진 찐빵보다도 못하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으로서는 근로자를 일단 고용하면 이후에 상황이 바뀌어도 보수와 배치, 고용량의 조정이 어려우니 채용 결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즉, 움직임이 억제된 노동시장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만들어 일자리 총량을 줄이는 효과까지 갖는다. 그러니 흔히들 오해하는 것처럼 기존 일자리를 지키면서 신(新)산업에서 일자리를 추가해내는 것은 일자리 대책이 아니다. 전체 노동시장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일자리가 생기기 쉽도록 만드는 것이 답인 것이다. 일자리의 배분과 총량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선 후보들과 정부가 일자리 배분에 침묵하는 것은 껄끄러운 이해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기도 하고, 돈 쓸 데 많은 중장년이 더 절박하니 이들의 고용과 보수를 우선해야 한다는 정서에 영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청년기에 기회를 잃으면 평생에 걸친 소득 경로가 그만큼 내려앉는다. 그러니 젊다고 해서 덜 절박한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어느 세대가 더 절박하고 덜 절박하다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일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에게만 유리하도록 고착된 제도를 뜯어고쳐 '능력·노력·성과'라는 보편적인 원칙하에 경쟁하도록 하는 것 외에 무엇이 공정할까.

    결국 청년실업 대책이란 청년의 눈물을 닦아준다고 생색내며 금전을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편파적인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용기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권 주자 중에 누구 하나 그런 말을 입이라도 벙끗했는가.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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