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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암살은 습격부터 절명까지 20분 걸렸다. 공격 시간은 3초 미만이었다. 두 여자가 김정남 얼굴에 뭔가 바르고 달아난 게 다였다. 신경 작용제 VX였다는 게 부검에서 밝혀졌다.

암살팀이 쓴 게 VX라면 김정남의 운명은 첫 3초에 끝났다고 봐야 한다. 그 뒤 20분은 헛된 허우적거림이었다. VX는 맛도 냄새도 없는 액체다. 촉감과 점성이 모터오일 비슷하다고 한다. 체중 100㎏ 성인이 마시면 0.4㎎, 피부에 바르면 8.6㎎이 치사량이다.

공항 CCTV에 잡힌 김정남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몰라 황망한 것 같았다. 자기 발로 의무실에 걸어가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암살팀이 그 사이 유유히 사라졌다. 그들은 자기네끼리도 냉혹했다. 미사일이 추진체를 떨어뜨리고 탄두만 날아가듯 주변 인력을 현지에 버려둔 채 핵심 인력만 평양으로 도주했다.

이 '20분'에 화급한 문제가 담겨 있다. VX는 세계 192국이 "전쟁 때도 쓰지 말자"고 약속한 대량 살상 무기다. 화학무기금지협약으로 제조·보유·사용이 금지돼 있다.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세 나라 중 하나가 북한이다. 그 북한이 화학무기를 꺼내 쓰기 시작했다.

북한 말고 VX를 테러에 쓴 유일한 집단이 일본 옴진리교였다. 1993년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가 명문대 나온 부하에게 사린 생산을 지시했다. 부하가 성공하자 "더 재미있는 건 없느냐"며 다른 독을 또 개발하라고 했다. 이듬해 부하가 VX 140g을 만들어왔다. 아사하라는 VX에 '신통력'이라는 암호를 붙인 뒤 테러 목표 세 사람을 찍어주며 "신통력을 써서 죽이라"고 명령했다.

나가오카 히로유키(永岡弘行·79)씨가 그때 죽을 뻔했다. 그는 옴진리교에 빠졌던 장남이 벗어난 뒤 다른 피해 가족들을 돕다가 표적이 됐다. 1995년 집에 가던 그에게 괴한이 접근해 주사기로 목 뒤에 VX를 뿌렸다. 처음엔 무슨 일을 당했는지 잘 몰랐다. 귀가 후 온몸이 뜨거워지며 흉통이 엄습했다. 69일간 사경을 헤맸다. 후유증도 오래갔다.

VX를 겪어본 그가 25일 요미우리신문에 "김정남이 갑자기 의식을 잃는 장면을 보고 VX라 직감했다. VX 생산은 국가 전체가 저지르는 범행이고, 북한은 마치 옴진리교 같다"고 했다. 신(神)인 양 군림하는 독재자란 점에선 아사하라와 김정은이 똑같다. 다른 건 '스케일'이다. 북한은 보유량 세계 3위 화학무기에 핵미사일까지 가졌다.

김정남 암살 소식이 전해진 밤 도쿄신문 고미 요지(五味洋治) 편집위원과 통화했다. 그는 김정남과 7년간 이메일을 150통 넘게 주고받고 두 차례 만났다. 그의 눈에 비친 김정남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김정남이 해외에 오래 살아 북한에 기반이 없지만, 백두 혈통 중 한 명이니 만에 하나 북한에 변고가 생기면 상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고 했다.

이제 그 가능성은 사라졌다. 김정은이 이번 테러로 더 강해졌는지, 자기 명을 재촉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북한은 VX 실전 경험을 갖게 됐다고 자신할지 모른다. 북한이 VX로 한·미 주요 공군 기지를 선제 타격할 가능성도 있다. 남과 북의 비대칭이 심해졌다. 기고자 : 김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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