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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올해를 빛낸 나라' 한국? 프랑스?

    김홍수

    발행일 : 2017.12.26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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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그해 두드러진 성과를 낸 국가를 '올해의 나라'(country of the year)로 선정, 연말에 발표한다. 올해는 촛불 시위로 정권을 바꾼 한국과 무소속 단기필마 대통령을 탄생시킨 프랑스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국을 후보로 올린 이유는 "북한 핵 위협이 고조되는 와중에도 국내 정치에서 큰 성취를 이뤘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프랑스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프랑스를 환골탈태시키고 있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권력 교체 그 자체보다 정권 교체 후 실질적인 개혁이 더 중요하다는 이코노미스트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우리나라 촛불 혁명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은 마크롱 개혁은 뭘까? 이코노미스트가 특히 주목한 분야는 노동 개혁이다.

    프랑스 노조는 한국 노조처럼 과격하고 비타협적이기로 악명 높다. 기업이 경영난 탓에 인력 감축을 시도하면 최고경영자(CEO)를 사무실에 감금하고 인질로 잡기도 한다. 마크롱 정부는 이런 노조를 상대로 노사 협상권을 산별 노조에서 개별 기업 노조로 이관하고, 해고 요건 완화, 추가 근무 수당 축소 등 강도 높은 노동 개혁을 단행했다. 마크롱은 노동계가 반대 총파업을 벌이자 "게으름뱅이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며 대통령 직권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마크롱은 과거 좌파 정부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미테랑 대통령 시절, 사회당 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는 법을 만들어 시행했다. 결과는 의도와 정반대였다. 인건비 부담이 커지자 기업들은 고용 축소와 공장 해외 이전으로 대응했다.

    올랑드 사회당 정부는 세수를 늘리기 위해 부유세를 신설했다. 연소득 130만유로(약 17억원) 이상 되는 부자들에게 세율 75% 소득세를 물렸다. 결과는 부유층과 고급 두뇌들의 국외 탈출이었다. 올랑드 대통령은 전임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가 천신만고 끝에 해낸 연금 개혁 성과를 무(無)로 돌려 버렸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엄청난 저항을 물리치고 연금 수령 연령을 2~3년 늦췄는데 이를 폐기해 버린 것이다.

    경제 전문가 출신 마크롱은 법인세 인하 등 '기업 중시' 개혁으로 프랑스를 재건하려 하고 있다. "새 프랑스 건설을 위해 도전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도전해서 성공한 국민이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기업가 정신이 구현되기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영국 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프랑스 비둘기들, 마크롱 품으로 돌아간다'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비둘기'란 세금을 피해 프랑스를 떠난 기업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두뇌뿐 아니라 돈도 돌아오고 있다. 올해 프랑스는 해외 벤처 투자금 유치 실적(27억유로)에서 처음으로 영국을 앞질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프랑스의 시행착오 경로를 답습하고 있다. 대기업, 고소득층만 겨냥해 세금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어렵게 정착시킨 공기업 성과주의 임금을 폐지하고, 저(低)성과자 해고 가능성을 열어준 취업규칙도 폐기했다.

    한 달 전쯤 만난 청와대 고위 당국자에게 '소득 주도 성장론'의 실효성을 따져 묻자 그는 즉답 대신 헤겔의 말을 인용했다. "미네르바(지혜의 여신)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폅니다."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서 '철학은 역사적 전개가 완료된 후에야 비로소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그는 "새 이론은 늘 이단 취급을 받았다. 현실에서 그 실효성이 검증되면 기존 이론을 대체하고 주류 이론으로 등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누가 뭐라든 소득 주도 성장 모델을 밀어붙이겠다는 태세다. 하지만 5000만 국민을 볼모로 '실효성 검증'을 해도 되는가.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막대한 기회비용만 치른다면 중국의 추격에 벼랑 끝까지 몰린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을까? 지금 필요한 것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함이다. 먼저 눈과 귀를 열고 프랑스의 선택을 살펴보기 바란다.

    기고자 : 김홍수
    본문자수 : 200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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