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50대 여성 윤모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가끔 찾아오는 사람을 아버지로 알고 살았다. 그는 윤씨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이름도 새로 지어줬고,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왔다. 윤씨는 그의 자녀로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올라가 있었다.

그러다 2014년, 윤씨는 그의 가족들로부터 '친생자 관계 부존재(不存在) 확인소송'을 당했다. 윤씨가 그의 친자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는 따로 아내와 자녀가 있는 사람이었다. 윤씨 어머니와 그는 불륜 관계였다. 그런데 그가 사망하자 가족들이 상속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소송을 낸 것이다. 윤씨는 그제야 자신이 그의 자녀가 아니었지만 어머니 부탁으로 그의 호적에 올라간 사실을 알았다.

윤씨는 재판에서 졌다. 그러면서 성(姓)이 윤씨에서 어머니 성인 이씨로 바뀌게 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소송에서 친자녀가 아닌 것이 확인되면 가족관계등록부가 자동으로 폐쇄된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쓰던 성을 쓸 수 없게 된다.

하루아침에 50년 가까이 써오던 성이 바뀐 윤씨는 큰 불편을 겪었다. 정신적인 충격도 컸다. 그는 "다시 윤씨 성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친생자 관계 소송은 진짜 친자녀인지를 확인해 친족·상속에 관한 법률관계를 정하는 것"이라며 "인륜의 근본에 관한 중요한 소송인데 판결이 난 후에도 종전과 동일한 성을 쓰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성 자체가 혈통을 나타내는 기능이 있는 데다 사회적으로도 성과 본(本)을 같이하는 집단인 종중(宗中)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감안한 판단이었다. 지난 4월 2심에서도 패소한 윤씨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윤씨 같은 경우가 드문 사례도 아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친생자 관계 부존재 확인 소송'은 4692건이다. 가사전문 배인구 변호사는 "친생자 관계가 인정이 안 됐는데, 종전 성을 그대로 쓸 수 있느냐는 문제는 현행 법규와 종중의 존재 등이 얽혀 있어 결정이 쉽지 않은 문제"라며 "우리 사회에서 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