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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대법원장의 '독거미 브로치'

독기 한 방 제대로 쐈다. 지난 24일 브렌다 헤일 영국 대법원장이 선보인 '독거미 브로치'의 위력이 상당하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장기 정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판결문을 읽는 장면이 TV 생중계로 퍼지면서 독거미 브로치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애벌레, 개구리 등 독특한 디자인 브로치를 즐긴 헤일 대법원장이 선택한 브로치 모양 그대로 보리스 존슨이 제대로 쏘였다는 평이다.

브로치를 정치적으로 가장 잘 이용한 인물은 미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다. 200점이 넘는 브로치 수집가이자 '내 핀(브로치)을 읽어라'라는 책의 저자로 전시회까지 열었던 올브라이트는 브로치를 가장 효과적인 외교 수단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엔 대사 당시 이라크 언론이 그녀를 독사 같다고 표현하자 보란 듯이 뱀 모양 브로치를 달아 응수했다. 그녀는 과거 인터뷰에서 "뱀 브로치 패션이 단순한 보석을 외교 도구로 탈바꿈시킨 첫 시도였다"고 밝혔다. 2000년 방북해 김정일을 만났을 때는 성조기를 달았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할 때는 유리 천장이 깨진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

사실 브로치 하면 '할머니 패션'의 대명사로 꼽혔다. 하지만 최근 2~3년 전부터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등을 비롯해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할머니 시크(chic)' 패션 트렌드를 이끌면서 브로치 역시 인기 액세서리로 급부상했다. 동식물에서 영감받은 아기자기한 브로치를 자주 선보이는 부쉐론이나 쇼메 같은 고급 주얼리 브랜드뿐만 아니라, 지난해 브로치 패션을 대거 선보인 알렉산더 매퀸과 에르뎀을 비롯해 샤넬과 버버리 등도 브로치 액세서리를 잘 이용하기로 유명하다. 똑같은 디자인의 기성복 재킷이라도 브로치 하나로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다. 불가리 '뮤즈'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브로치를 머리핀에 끼어 헤어 액세서리로 자주 응용했다.

여성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35년간 샤넬을 이끌었던 카를 라거펠트는 검은 넥타이에 거의 항상 브로치를 달아 포인트를 줬고, 프랑스 신발 브랜드인 로저 비비에의 디자이너 게라르도 펠리니는 목선이 올라온 셔츠에 브로치를 달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옷장을 뒤져라"는 게 요즘 패션계 유행어. 할머니도 왕년에는 패셔니스타였다. 기고자 : 최보윤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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