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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에 종종 굴비 광고가 보인다. 조기의 문화사에 관한 책도 나왔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력을 보니 얼마 전 곡우(穀雨)가 지났다. 예전 같았으면, 조기잡이가 한창이었을 때다. 남중국해에서 겨울을 난 조기들은 봄이 되면 제주 추자도를 거쳐 법성포 인근 칠산 바다를 지나 연평도까지 올라간다. 그 길목을 노려 칠산 바다에서 조기잡이가 성행했다. 거기서 잡힌 조기들은 법성포 포구에서 굴비로 다시 태어났다. 최근엔 조기가 많이 떠나갔지만 중국 쪽에서 잡은 조기를 지금도 법성포로 들여와 말린다. 그래서 굴비 하면 여전히 법성포다.

10여 년 전, 어느 갤러리 대표와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반찬 가운데 하나로 굴비구이가 나왔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그의 접시엔 굴비 몸통과 머리뼈만 가지런히 남았다. 내 접시엔 굴비 잔해가 어지럽기만 한데 그는 지느러미까지 샅샅이 먹고 완벽하게 뼈만 남겼다. 원래 점잖은 사람이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굴비를 이렇게 진지하게 먹다니.

몇 년 지나 법성포에 갔다. 굴비로 먹고사는 사람, 굴비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 몇몇과 하루를 보냈다. 그때 "굴비는 아홉 번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물에 걸려 죽고, 냉동되어 얼어 죽고, 소금에 절어 죽고, 끈으로 엮을 때 졸려 죽고, 건조할 때 말라 죽고, 마지막에 냉동실 들어가 또 죽고…. "굴비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26명이 먹고 산다"는 얘기도 들었다. 조기 잡는 사람, 말리는 사람, 굴비 엮는 줄 만드는 사람, 굴비 엮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 죽어서도 많은 사람 먹여 살리는 생선이 다름 아닌 굴비라고 했다.

굴비구이 먹는 법도 배웠다. 등지느러미 쪽을 길쭉하게 잘라내야 몸통을 제대로 가르고 뼈를 깔끔하게 발라낼 수 있다는 사실. 오랫동안 즐겨 먹었으면서도 그때 법성포에서 비로소 굴비 먹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 후로 굴비구이 먹을 때마다 갤러리 대표가 떠오른다. 나도 굴비구이를 좀 더 품격 있게 먹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기고자 : 이광표 서원대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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