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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전쯤이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단원 이름을 '생각의 나래를 펼치자'고 했더니 편수관이 바로 '생각의 날개를 펼치자'로 고쳤다. 기러기는 날개를, 생각은 나래를 펼쳐야 말맛이 난다고 했더니, 어문 규범에서 나래는 표준어가 아니란다.

낱말에는 다양성과 섬세함이 담겨 있다. 비록 개념적 의미는 같다 하더라도 상황에 어울리게 낱말 하나하나는 정서적 의미를 품고 있다. 비록 날개와 나래는 개념적 의미가 같다 하더라도 정서적 의미는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앞뜨락에 꽃내음이 싱그럽다'에서 뜨락과 꽃내음도 그때는 비표준어였다. '꽃냄새가 싱그럽다'가 바른 규범이지만 영 말맛이 나지 않는다.

내가 국립국어원장으로 일할 때 펼친 일 가운데 한 가지. 언어 현실과 규범에 차이가 있는 경우, 모든 사람이 편하게 받아들여 쓰는 단어는 규범으로 받아들여 우리말을 풍부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언어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또한 규범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상생활에서 버젓이 잘 쓰고 있는 말을 규범이 아니라고 통제한다면 국민이 규범을 우습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

자료 수집을 통해 의견을 모으고 또 학자들의 검토를 거쳐 2011년 8월 국어심의회에서 드디어 큰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표준어가 아니었던 '내음, 뜨락, 나래, 손주'가 '냄새, 뜰, 날개, 손자, 손녀'와 함께 당당히 표준어가 되었다. 아울러 그날 '짜장면, 먹거리'도 '자장면, 먹을거리'와 함께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사랑이 뭐기에'만 쓰라고 했던 규범은 '사랑이 뭐길래'도 허용했다.

나는 이런 몇몇 단어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이 참으로 뿌듯했다. 그렇다. 말은 생명력을 지닌다. 그래서 쓰이던 말이 사라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말이 생겨 널리 퍼지기도 한다. 이러한 생명력을 거쳐 우리말은 발전한다. 5월, 봄꽃 가득한 뜨락에서 꽃내음을 즐기며 생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보는 것은 어떨까? 기고자 : 권재일 한글학회장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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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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