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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형 SOC(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디지털 산업 투자를 포함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다음 달 초 발표하겠다고 한다. 여권에선 이를 '한국형 뉴딜'이라 부르며 각종 사업 아이디어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한국형 뉴딜' 프로젝트는 문재인 대통령이 총선 후 첫 비상경제회의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범국가적 대형 사업"을 주문하면서 속도가 붙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해관계 대립으로 미뤄졌던 대규모 국책 사업도 신속하게 추진하라"며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 의지도 비쳤다. 정세균 총리도 자율주행차·인공지능 등을 언급하면서 '디지털 뉴딜'을 제시했다. 4차 산업혁명 분야와 SOC 건설 등을 망라한 대형 국책 사업에 국민 세금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방역의 한편으로 '코로나 이후'를 대비한 경제 회복 전략 짜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바이러스 확산이 진정된 이후 펼쳐질 경기 회복 국면에서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한 물밑 경쟁이다. 이미 저(低)성장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도 코로나 위기는 어쩌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할 기회가 될 수 있다. 20세기 후반 제조업 혁명, 2000년대 정보화 혁명에 이어 새로 펼쳐질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도에 주도적으로 올라탈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국형 뉴딜'을 통해 효율적 시스템과 제도를 구축하고 국가 자원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3년 내내 '자율주행차 육성' '인공지능 강국' 등 '혁신 성장'을 외쳤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신산업을 키우려면 그에 걸맞은 제도를 갖추고 기존 규제를 과감히 제거해줘야 하는데 모두 말뿐이었다. 규제를 풀기는커녕 '타다 금지법'을 강행하는 등 새로운 규제를 추가하면서 신산업의 싹을 잘랐다. 문 대통령은 "규제 혁신을 위한 혁명적 접근"과 "기득권 규제의 과감한 혁신"을 얘기했지만 대부분 허언이 됐다. 거대 노조와 이해 집단, 시민 단체의 집단 반대를 뚫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국정 운영은 시장 활력을 북돋아주려는 경제 활성화 기조와 거꾸로 갔다. 환경과 안전을 명목으로 한 각종 규제, 친노조 일변도, 최저임금과 법인세율 인상 같은 반기업적 조치를 취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 52시간 근무제로 제조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총선 승리 이후에도 여권 당선자들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한다. 정책이 반기업·반시장 기조 그대로라면 뉴딜 아니라 무슨 딜을 해도 성과가 나올 수 없다.

노동 개혁, 규제 개혁 등 구조 개혁 없이 세금만 퍼붓는 '한국형 뉴딜'은 경제 부흥이 아니라 정치 부흥만 이룰 수 있다. 이미 올해 예산에도 총 24조원 규모의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과 48조원이 드는 도서관·체육시설 등 생활 SOC 사업이 포함돼 추진되고 있다. 이런 사업에 세금을 더 부어도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되지 않는다. 반짝 성장률 숫자를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우는 경제를 반전시킬 수는 없다. 노동 개혁과 규제 혁신,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수반하지 않는 '한국형 뉴딜'은 수없이 명멸한 경기 부양책을 한 번 더 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