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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받던 그녀, 왜 도끼를 꽂아놓고 떠났나

록 콘서트 같았던 커튼콜이 끝나고 박수 소리도 잦아들 때쯤, 무대 위에 한 점만 밝히는 핀 조명이 들어왔다. 무대 맨 앞 가장자리, 날 선 도끼 한 자루가 반짝인다. 관객들이 도끼 앞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 뮤지컬 '리지' 공연장에선 벌써 익숙해졌다. 소셜미디어에도 이 도끼 사진이 넘쳐난다. 도대체 도끼가 뭐길래.

1892년 미칠 듯 더웠던 여름날, 미국 매사추세츠의 보든가(家) 저택에서 아버지와 계모가 엽기적으로 살해됐다. 세상의 관심은 용의자로 지목된 두 딸 리지와 엠마, 가정부 브리짓에게 쏠린다. 뮤지컬 '리지'는 소설이나 영화로 다양하게 재해석됐던 미국의 미스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 삼아, 억압적 부모와 여성을 옥죄는 사회를 극복해낸 여자들의 우애와 애정에 관한 이야기를 변주한다.

폭주하는 드럼과 기타의 굉음, 거친 듯 섬세한 로큰롤 넘버를 소화하는 건 단 4명의 여배우들이다. 배우들은 남자 배우 없는 무대에 대한 우려 따위 접어두라고 웅변이라도 하는 듯,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질주한다. 폭발적 에너지다.

부모의 죽음에 관한 스릴러 같았던 1막이 끝난 뒤, 진짜 하이라이트는 2막에 온다. 드센 언니 '엠마'에 이어 소심했던 동생 '리지'도 허리를 꽉 죈 코르셋과 정숙한 숙녀의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스모키한 메이크업과 검은 스타킹에 가죽옷 차림으로 무대에 선다. "여성이 욕망, 분노, 힘, 집요함, 증오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살인 용의자로, 또 증인으로 법정에 선 세 여자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고 법복 입은 남자들을 몰아붙인다. 여성은 부모나 남편의 예속물로,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없는 덜된 인간으로 여겼던 것이 시대의 규범. 그걸 지켜야 하는 신사들은 이 여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모두가 자유를 얻은 뒤, 리지는 무대 앞 가장자리에 도끼를 꽂아놓고 떠난다. 경찰이 살인 흉기로 의심했지만 끝내 증명하지 못했던 그 도끼는, 억압하는 모든 것을 찢고 깨뜨렸던 여성들의 무기였다. 록과 메탈음악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고막 보호에 주의할 것.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6월 21일까지. (02)3485-8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