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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격 폭락으로 판로를 잃은 전남 해남의 '왕고구마'가 화제가 됐다. 한 외식 사업가가 평소 친분이 있던 대기업 경영자에게 고구마 구매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부터다. 대기업 유통망을 통해 고구마가 판매됐고, 그 경영자는 소셜 미디어에 왕고구마로 만든 맛탕 사진을 올리는 열성도 보였다. 이런저런 말이 나왔지만,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의기투합이 일회성 이벤트로만 취급돼선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선 자리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호텔에서 고구마를 사용하는 메뉴들을 점검했다. 파트별 주방장들과 어떤 방법으로 활용할지 상의했다. '고구마 수프'와 '고구마 케이크', 그리고 '단호박&고구마 생식빵 샌드위치' 등에 쓰기로 했다. 해남 왕고구마를 주문해 재료 특성부터 분석했다. 당도는 좋았지만 섬유질 비율이 조금 높았다. 같은 재료라도 먼저 미세한 개별 특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조리법을 적용해야 실패가 없다. 샌드위치에 들어갈 퓌레를 만들 땐 섬유질 함량을 낮추기 위해 체로 거르는 조리 과정을 추가했다.

메뉴를 선보이자, 손님들이 즉각 반응을 보였다. 특히 델리에서 판매하는 고구마 케이크는 부드럽게 씹히는 촉감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 이게 그 착한 고구마인가요?" 하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 '바로 그 해남 왕고구마'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표정이 더 환해졌다. 공들여 지은 귀한 농산물이 가격 폭락으로 버려질 때, 힘을 모아 농촌을 도우려 했던 이야기를 다들 알고 있었다. 그들 얼굴에 피어오르는 하나같은 미소가 증거였다. 손님들의 그 표정은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퍼뜨리는 일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호텔 메뉴에 해남 왕고구마를 식재료로 쓴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티끌 같은 실천을 통해 작지 않은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선한 영향력'이란 향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절로 번져가며 이를 느끼는 모든 이를 행복하게 했으니 말이다. 기고자 : 유재덕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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