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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노(No) 경기보다는 무(無)관중이 나았다. 한국 프로야구가 5일 개막했을 때 환호성을 지른 것은 국내 팬만은 아니었다. 메이저리그가 실종 상태인 미국의 팬들까지 졸린 눈 비벼대며 새벽에 한국 야구를 지켜보고, 응원 팀까지 만들며 가세했다.

스포츠는 코로나에 지친 사람들의 삶에 재미와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동안 팬들로부터 받았던 열광적인 응원 에너지를 가슴속에 담아 두고 뛴다면, 팬들이 현장에 없더라도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끔 '품질이 떨어진다'는 상품평이 달리곤 하지만, 재탕 삼탕 된 냉동식품에 질린 입맛을 달래주기엔 제조일자 2020년 5월인 한국 야구만 한 게 없는 것 같다. 살아 숨 쉬는 라이브 경기를 보면서 눈물이 났다는 미국인 팬도 있으니까.

그런데 한국 야구를 처음 접한 미국 팬들은 스타 선수의 활약이나 명승부보다는 하나의 동작에 열광한다. 타자가 타격 후 방망이를 내던지는 것. 미국에선 배트플립(Bat Flip), 국내에선 '빠던(빠따 던지기)'이라 부르는 퍼포먼스였다. 한국은 팬 서비스로 여기는데,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상대 팀과 야구에 대한 모독 행위로 간주된다. 그래서 보복 투구를 부르고, 여차하면 벤치 클리어링으로 '확전'된다.

정작 '배트플립'을 대하는 미국 팬들의 시선은 선수들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KBO 리그의 '빠던' 동영상은 미국에 소개될 때마다 인기 폭발이다. 몇몇 국내 선수는 이 개인기로 미국 땅 안 밟고도 이미 현지 유명 인사가 됐다. 최대 스포츠 케이블인 ESPN의 유명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2016년 아예 한국을 직접 방문해 '빠던'의 기원을 찾아다니고 칼럼까지 썼다. 메이저리거들이 전통, 불문율 때문에 꺼리는 '빠던'에 종전에 느낄 수 없는 재미를 맛봤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민적 스포츠라던 메이저리그가 관중 평균 연령이 50대인 '아재 스포츠'로 전락해 인기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변화 대신 전통에 집착하면서 그라운드에 연출되는 정적(靜的)인 분위기가 긴 경기시간과 맞물려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그의 미래에 위기를 느낀 커미셔너나 브라이스 하퍼 같은 신세대 스타가 "야구를 더 재미있게 만들자"며 배트플립을 옹호하지만, 아직 많은 선수가 들은 척 만 척이다. 100년 넘게 한 가지 색 야구만 바라보던 미국인들에게 다양한 색깔을 내보이는 한국 야구는 비록 '동네야구' 수준일지라도 흥미진진하다.

아마도 자국 리그가 개막하면 한국 야구에 대한 지금 관심은 확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제 발로 찾아온 손님을 그냥 내보내는 것처럼 후회스러울 일은 없다. 한국 야구는 '빠던' 외에도 중독성 강한, 독특한 맛이 여럿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는 사직구장의 열혈 응원, 물대포로 한여름 더위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KT위즈파크의 '워터페스티벌'을 경험한 외국 팬들은 입을 쩍 벌린다. 이 맛을 잊지 못해 매년 미국에서 비행기 타고 한국 야구를 보러 오는 사람도 있다. 미국 야구가 스케일 큰 뉴욕 스테이크, 일본 야구는 섬세한 손끝이 필요한 스시라면, 한국 야구는 여러 가지 신선한 재료를 함께 버무려 고추장으로 절묘한 맛을 만들어내는 '비빔밥'이다.

인류의 삶은 앞으로 스포츠를 비롯한 사회 전 분야에서 BC(코로나 이전)와 AC(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다. 그 경계선상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 야구가 글로벌화를 마음속에 두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위기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만들어낸다. 선수들이 고추장에 투혼을 잘 담아낸다면 뜻밖의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