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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에 실망한 분들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아 봐라" "이제 지옥 맛 좀 보라"는 '저주파'다. 이런 '나라 걱정'에서는 우리 아들과 딸들이 살아갈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임'이 없는 보수는 아집으로 비칠 수 있다.

또 하나는 2년 뒤 대선에서 일거에 바로잡겠다는 '한 방파'다. 정당 득표율만 보면 민주당(더불어시민당) 33.3%, 통합당(미래한국당) 33.8%로 비슷하다는 근거를 든다. 대선 때까지 경제는 더 어려워질 테고, 번듯한 대선 후보를 내세우면 돌아선 20~50세대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 방파'는 과거보다 그래도 미래를 본다. 그러나 '한 방파' 역시 진보·좌파가 지난 20년 비(非)주류에서 주류가 되기 위해 어떤 혁신과 '자기 부정'의 몸부림을 쳤는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운동권 출신을 두고 "학생 때 공부 안 하고 데모만 했던 무능한 세력"이라고 규정할 뿐이다. 여권 핵심 중 이런 부류도 있다. 하지만 다수는 정치권력을 위해 또는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세상을 위해 분투해왔다.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고, 때론 내부 권위에 도전하며 투쟁하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하고,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아 몸집을 키워왔다. 거저먹은 권력은 아니다.

민주당 강병원 당선자는 90년대 초반 8·15만 되면 판문점으로 달려가던 주사파와 결별하고 '생활 진보'를 내건 '21세기 진보학생연합'을 만들었다. '생활 진보'는 지금으로 치면 '복지'에 해당한다. 이념보다 복지가 학생들 관심사라는 시대 흐름을 읽은 것이다. 이 계열 몇 년 후배가 박주민 당선자다. 민주당 박용진, 허영 당선자도 당시 운동권 주류였던 주사파와 대립하며 변방에서 비주류 노선을 걸었다. 정의당에도 당선은 안 됐지만 김종철, 강상구 같은 정치 상비군이 많다. 학생회장, 정치권 발탁, 국회의원이라는 편한 길만 생각했다면 주사파 언저리에 머물면 될 일이었다. 이런 몸부림이 없었다면 변화하는 국민의 선택을 받기 어려웠다. 정치적 단련과 시행착오 과정을 20년 넘게 거친 사람들이 민주당, 정의당에 적지 않다.

궤멸 수준의 패배를 당한 보수 정당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거둔 '미래'도 있다. 여공(女工) 출신 인권 변호사, 싱글 맘 당선자도 있고, 호남 출신의 '열혈 검사' 출신도 있다. 김정은 문제로 잠시 상처를 받았지만 탈북자 당선자들은 통일의 자산이다. 낙선자를 보면 전남에 출마했던 대구 출신 서른네 살 변호사가 있다. 그는 선거로 1억을 빚졌지만 아예 순천에 변호사 사무실을 냈다. 성인이 되고 첫 총선 때 투표했던 민주당 후보에 도전했던 서른세 살 청년 기업인도 있다.

이들이 광주에서 5·18 토론회도 하고, 노량진에서 청년 취업 토론도 하면 좋겠다. 탈원전 비판도 하면서 기후변화에 대안을 내고 외국인 노동자와 성소수자에게 입당 원서를 받길 기대한다. 민주노총과 공무원 노조를 만나 "당신들이 양보해야 비정규직 숨통이 트인다"고 설득도 할 것이다. 환경, 젠더, 노동, 평화, 인권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진보가 '한 방'에 모든 걸 걸었던 시절 노래다. 그러나 좌파는 혁명 노선을 버리고 정치권, 학계, 문화계 등 곳곳에 '씨'를 뿌리며 기다렸다. 보수가 혁신과 변화라는 고통의 과정 없이 "한꺼번에 되찾겠다"는 주문만 따라 해선 안 된다. 지금은 긴 호흡으로 더 많은 '씨'를 뿌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