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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代 이상 여성 자전에세이 봇물

"살면서 너무 험하게 입고 먹으며 고생할 일이 아니더라. 차라리 빚지면서도 화려하게 살았던 부모는 사무치지 않더라. 수제비 보면 수제비밖에 못 먹었던 부모가 생각나고, 맛있게 구운 고기 앞에서 못 드시고 세상 떠난 부모가 생각나 가슴에 맺힌다는 것이다. 차라리 헤퍼서 자식들 힘들게 했더라도 잘 누린 부모가 가신 뒤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그럴까. 그럼 덜 아팠을까."

지난 3월 출간된 이혜숙(67)씨의 첫 책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글항아리)의 한 구절.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렇게 그리워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식당을 하는 이씨의 책은 자신의 굴곡진 인생사를 각혈하듯 토해낸다. 전남 함평서 태어나 아이 다섯을 낳고 넷을 키웠다. 등굣길에 잃어버린 첫아이가 평생 응어리가 됐다. 살림 살며 소설도 써 봤지만 등단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썼다. 노트북 놓고 쓰면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일 것 같아 작은 키보드를 휴대전화에 연결해 음식 만들고 손님 맞는 틈틈이 글을 썼다. 증조할머니·할머니·어머니의 삶, 식당 손님들 이야기, 5·18의 상처 등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적었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 눈 밝은 편집자에게 발탁돼 책이 됐다. 무명 저자이지만 최근 중쇄를 찍었다.

'노년층 여성의 에세이 쓰기'가 활발하다. 삶의 풍파를 다 겪은 여인들이 흔히 "내 인생을 소설로 쓰면 책 열 권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여성들은 소설적 허구보다는 자기 실제 삶을 절절히 고백하는 에세이를 많이 쓴다. 이씨를 발굴한 글항아리 출판사의 '아주 보통의 글쓰기' 시리즈는 필부필부(匹夫匹婦)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보자는 기획. 지금까지 나온 세 권 모두 저자가 여성이다. 첫 권 '문 뒤에서 울고 있는 나에게'(김미희 지음)는 어릴 때 친모와 헤어져 태어난 날도 모르는 저자가 남편 잃은 슬픔을 적었고, 두 번째인 '나의 엄마와 나'(김문음 지음)는 62세인 저자가 25년 전 세상 뜬 어머니에 대해 쓴 사모곡(思母曲)이다. 이은혜 편집장은 "가문의 위신이나 자신의 빛나는 존재 등 '사회적 감투'를 과시하는 남성들의 원고와 달리 여성들은 가족의 민낯, 비극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며 "이 경우 사회적으로 성공한 오빠들이 '왜 가족의 치부를 까발리냐'며 화를 내더라"고 전했다.

전남 순천 한글학교에서 공부한 할머니 15명이 함께 낸 그림 일기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도 스테디셀러다. 여자라서, 가난해서 평생 문맹으로 살았던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낸 이 책은 지난해 2월 나와 1만4000부 팔렸다. 손경애(69) 할머니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습니다. 학교도 안 보내주고 술 먹고 노름하고 여자를 집까지 데려와 밥상까지 차려 바치게 했습니다. 돌아가셨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아버지 묘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글을 배우면서부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아버지 산소에 절을 올렸습니다."

이은방(91) 할머니가 지난 1월 낸 '곱게 물든 저녁노을 멀리서 손짓하네'(독서광) 역시 "죽기 전에 내 살아온 이야기를 남겨야겠다"고 다짐한 필자가 석 달간 종이에 연필로 적어 내려간 자서전.

지식인 여성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사학자 정옥자(78) 서울대 명예교수의 에세이 '오늘이 역사다'(현암사)는 개인의 역사를 통해 한국 현대사를 증언한다. 여성이라 겪은 학계 차별뿐 아니라 6·25 피란길에 청평호수에서 아버지가 세 여동생을 안은 채 배 아래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 광경을 바라봐야 했던 비극적 가족사도 털어놓는다.

60대 이상 여성들은 왜 자전 에세이를 쓸까. 이혜숙씨는 "내 또래 여자들은 가정이란 굴레에 묶여 꿈을 못 펼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로 한스러운 토로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장혜원 남해의 봄날 편집자는 "늦은 나이에 글을 배워 꾸밈없이 써 내려간 여인들의 이야기엔 다양한 감정과 서사가 담겼다. 그것이 감동을 자아내는 것 같다"고 했다. 기고자 :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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