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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90代 할머니에… DLF(파생결합펀드) 5억 팔고, 주택청약까지 들게 한 은행
서울 한 요양원에 거주하는 장모(여·93)씨는 강남에 고가 아파트를 가진 자산가다. 남편과 십 년 전 사별했고, 자식도 없다. 외로운 장씨에게 재작년 은행 PB(자산관리가)가 다가왔다. 먹을 것을 싸들고 찾아와 자식처럼 살갑게 굴었다. 그러던 PB는 장씨에게 고위험 금융상품인 DLF(금리 등 자산 가격의 변화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결합펀드)에 5억원어치 가입시킨 것을 비롯해 금융 상품 40여 가지에 총 20억원어치를 유치시켰다. 심지어 장씨에게 아무 필요 없는 주택청약까지 들게 했다. 장씨가 투자한 DLF는 나중에 원금 손실이 크게 났다.은행들은 금융 지식이 부족한 노령층을 대상으로 상품 판매에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10월 DLF에 투자한 개인 3021명 중 60대 이상이 1462명으로 절반(48%)에 달했다. 70대 이상 비율도 21%나 됐다. 약탈적 '해적 뱅킹(Pirate Banking)'이라는 비난이 나올 만하다는 지적이다.
①직원도 이해 못 한 상품 권유
차모(65)씨는 작년에 대여금고를 개설하러 은행을 찾았다가 "1억원 이상 예치가 필요한데 DLF로 하시라"는 권유를 받았다. 차씨는 정기예금에 들고 싶었지만 직원이 "미국 금리가 40% 이상 떨어지지만 않으면 예정 수익률을 주는 상품"이라고 설득해 덜컥 DLF에 가입했다. 그러나 '미국 금리'는 알고 보니 훨씬 복잡한 '미국·영국 이자율 스와프(CMS) 금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차씨는 은행원조차 이 금리가 뭔지도 잘 모르고 자신에게 투자를 권했음을 알았다. 결국 차씨는 원금을 절반 가까이 날렸다.
금융 투자에 대한 은퇴·고령 투자자의 인식 수준은 훨씬 낮다. 본지가 금융소비자원·금융소비자연맹과 사모펀드 투자 피해자 38명을 대상으로 금융 상식을 테스트해본 결과 '직원이 각서를 써주면 원금이 보장되는 것'으로 잘못 아는 비율은 열 명 중 아홉 명이나 됐다. '은행이 통장을 만들어주는 행위가 원금 보장을 뜻하는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70%에 달했다. 피해를 입고 난 뒤에도 금융 상식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②고객 동의도 없이 펀드 마구 가입
투자자들의 이런 약점을 은행들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박모(79)씨는 작년 초 노후 자산 1억원을 라임펀드에 넣었다가 환매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처음 은행 부지점장은 녹취도 하지 않고 '고위험 투자 확인'란에 박씨 동의도 없이 체크했다. 라임펀드 사기 판매 문제가 불거지자 부지점장은 "은행도 피해자"라며 "5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황당한 해명을 했다.
은행들은 앞에선 불완전 판매를 하고 뒤에선 편법을 동원해 가며 펀드를 찍어냈다. 작년 4월 한 자산운용사는 은행의 지시를 받고 비슷한 유형의 사모펀드를 여러 개 출시했다. 사모펀드는 위험한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법상 투자자 수가 49인 이하로 제한된다. 그러나 은행은 사실상 하나인 공모펀드를 49인 투자용으로 다시 잘게 쪼개 사모펀드로 파는 편법을 썼다. 사모펀드보다 강한 공모펀드의 규제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③은행, 고위험 펀드 판매 비율 줄여가야
은퇴자 추모(58)씨는 최근에도 은행에서 한두 달에 한 번씩 걸려오는 투자 권유 전화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는 은행원 권유로 국내 주식형 펀드에 2000만원을 투자했다가 20%의 손실을 봤다. 추씨는 "원금이 손해나도 은행은 수수료로 투자액의 0.7%를 매년 떼가더라"며 "은행 전화는 들어본 적도 없는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고위험 펀드 판매를 제약해야 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금융위는 작년 12월 고위험 금융 상품에 관한 대책을 내놓으며 은행들이 원금 대비 20% 초과 손실이 가능한 고위험 파생 상품을 팔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금감원이 지난 2월 말과 3월 말 검사한 결과 일부 은행들은 고위험 상품 판매 잔액에서 여전히 기준치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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