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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먹기 위한 출장이라면 '먹출장'이라고 해야 할까? 먹는 방송을 '먹방'이라고 하니 말이다. 메뉴 개발 보직을 맡고 있을 때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위해 뉴욕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 업무의 내용은 단순하다. 뉴욕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들을 찾아가 요리를 직접 맛보고 자료를 모아오면 된다. 부럽다고? 그런데 막상 해보면 이것도 만만치가 않다. 고급 레스토랑들이 문을 열어 주문을 받는 시간은 8시간 남짓이다. 그 시간 동안 레스토랑과 카페, 베이커리 등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한다. 하루에 최소 다섯 끼는 먹어야만 한다. 무엇보다 혀가 문제다. 너무 많은 음식을 한꺼번에 만나면, 더 이상 맛을 분별하지 못한다.

출장 이틀째 아침, 혀에만 몰린 감각을 다른 기관으로 분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에 'JB 프린스(Prince)'가 있었다. '뉴욕 요리사들의 성지'라 불릴 만큼 유명한 주방용품 가게다. 그곳에 들어서자, 눈앞에 별빛이 반짝거리고 귀에선 쨍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과연 천국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가지고 싶던 조리 도구들이 모두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진열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칼을 보니 심장이 요동쳤다. 마음에 드는 칼을 꺼내 잡아보았다. 적당한 묵직함과 절묘한 균형감이 손끝에서 섬세하게 전해졌다. 그 칼에는 음악적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칼립소처럼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주저 없이 그 칼을 들고 카운터로 갔다. 그런데 계산기에 찍힌 가격이 뭔가 이상했다. 내가 봤던 가격에서 0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가격표를 잘못 봤던 거다.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돈이면 아이들에게 한우갈비를 몇 번 사 먹일 수 있을까. 결국 칼을 놓고 나왔다. 길을 걸으며 '칼은 요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욕심이나 욕망이 이글거릴 때,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종종 이 주문을 외운다. 인생에서 가끔은 선택이 철학을 만들기도 한다. 기고자 : 유재덕 웨스틴조선호텔서울 조리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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