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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의 엄마는 마당에 걸어둔 커다란 가마솥 앞에서 불을 때고 계셨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집을 나와서 산, 쉰 넘은 뚝뚝한 딸은 "추운데 여기서 뭐하시노?"로 간만의 반가움을 대신했고, 내 엄마는 "왔나?" 하며 웃으셨다.

겨울에 가마솥이나 솔가지를 보면 기억 저쪽에서 소환되는 음식이 있다. '국시기'다. '갱시기'라고도 하고, 표준말로는 '갱죽'이라고 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 동네는 거의 나무를 땔감으로 썼다. 농한기란 말이 무색하게 겨울에도 아버지들은 바쁘셨는데, 많게는 하루에 세 번도 지게를 메고 나가셨다. 가끔은 나도 놀이 삼아 친구들이랑 깔비(떨어진 마른 솔잎)를 모아 오거나 고두배기(썩은 나무 뿌리)를 뽑아 오기도 했다. 식구들이 아침을 먹기 전에 아버지는 나무를 한 짐 해오곤 하셨다. 그럴 때면 엄마는 새벽 참으로 빠르게 국시기를 만드셨다. 아버지만 드시는 거라 석유 곤로(풍로)에 작은 냄비로 해도 됐을 텐데도 이상하게 내 기억엔 가마솥에 끓이셨던 걸로 각인돼 있다.

국시기에 들어가는 재료는 간단하다. 김치와 콩나물에 멸치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식은 밥과 파나 마늘을 넣고 조금 더 끓여 내면 끝. 콩나물은 온돌방 윗목에서 직접 길러서 먹었는데 수시로 콩나물시루에 물을 줬던 생각이 난다. 잠자는 딸이 깰까 봐 조용조용 참을 드셨겠지만 가끔은 나를 깨워 같이 먹자고 하셨다. 늦게 퇴근한 남편이 아이스크림을 사 와선 잠에 취해 징징대는 아들을 굳이 깨워서 먹이려는 마음과 닮았다.

약지 못하고 우묵하기만 했던 부모님의 고된 삶과 연결되는 음식. 새벽 찬 바람에 나설 남편을 위해 젊은 내 엄마가 뜨끈하게 끓여냈던 국시기. 추운 날 배까지 고픈 날이면 후후 불며 먹던 그 국시기가 일찍 가신 아버지 생각과 함께 간절하다. 내가 끓이면 그 맛이 아니다. 기고자 : 강미자 51세·경기 안양시 동안구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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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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