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진위 논란에도 경매 강행한 '간송 불상'… 새 주인 못 찾았다

    허윤희 기자

    발행일 : 2020.05.28 / 문화 A20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에 내놓은 보물 2점, 응찰자 0명으로 유찰
    문화계 "15억에 걸맞은가… 지나친 사회적 관심도 부담된 듯"
    국립박물관 "유찰 소식 안타까워… 간송 측과 구매 협상 계속할 것"

    "경매 시작가는 15억원입니다. 15억원…, 없습니까?"

    몇 초간 정적이 흐르자 베테랑 경매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확인합니다. 15억원…, 없습니까?" 27일 오후 6시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경매장. "땅!" 하는 망치 소리가 무겁게 공기를 갈랐다. "유찰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리 문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금동 불상 두 점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유찰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후손이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두 점이 결국 유찰됐다. 이날 열린 경매에서 보물 제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제285호 금동보살입상이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나왔으나 두 점 모두 응찰자가 나서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전화와 서면으로도 응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제강점기 간송이 수집한 이 불상들은 현재 간송 후손이 소유하고 간송미술관이 관리해 왔으나, 누적된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간송미술관이 국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내놨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해지면서 경매 결과를 놓고 초유의 관심이 쏠렸다.

    문화재계 관계자들은 "진위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던 점, 15억원이라는 가격의 적정성, 국립박물관이 사전 협상 후 구입을 희망했는데도 경매를 강행한 점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앞서 학계에서는 "두 점 모두 성분 분석 등 진위 여부를 먼저 확인해야 하지만 그동안 간송이 너무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연구자들에게 조사를 허락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는 견해가 제기됐다.〈본지 22일 자 A18면〉

    또 국립중앙박물관이 "순수 민간단체인 국립중앙박물관회(회장 신성수 고려산업 회장)의 후원을 받아 국립박물관이 구입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케이옥션과 사전 합의를 시도했지만(본지 27일 자 A20면), 옥션 측이 경매를 강행한 점도 개인 컬렉터들에게 부담이 됐을 것이란 관측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불상 진위 논란이 있지만 일제강점기 열악한 상황에서 간송 전형필이 구입해 지켜왔다는 스토리에다 국가가 구입해야 한다는 여론이 워낙 높아 압박이 심했다"고 했었다.

    ◇왜 아무도 손들지 않았나

    이날 경매 유찰은 예견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고미술계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워낙 주목받은 경매품이라 컬렉터들이 나서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립박물관이 '경매 없는 구매'를 희망한다는 게 알려졌는데도 경매가 진행된 이상 개인이 나서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진위 논란이 있는 불상에 지나치게 높은 가격이 책정됐다는 의견도 나왔다.

    불상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유찰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지금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간송 선생의 뜻이 훼손되지 않게 협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유찰된 경매품인 데다 개인 소장품 거래에 국가가 개입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불상 경매 두고 간송 내 갈등

    간송 측이 불상을 경매에 내놓은 배경에 대해서도 여러 얘기가 나온다. 전영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26일 조선일보에 "내가 40년간 미술관을 운영할 때는 아무리 가난해도 이렇게는 안 했다"며 "(불상 경매에) 나는 끝까지 도장을 찍지 않았다"고 했다.

    간송미술관은 1938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사립 미술관이다. 2대인 전성우 전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거쳐 3대인 손자 전인건 관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변화를 시도했다. 2014년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5년 협업으로 외부 전시를 펼치고, 성북동 보화각 옆에 신관을 짓고 대구에 분관을 마련하는 등 청사진을 발표했으나 난항을 겪고 있다. 전영우 이사장은 "새로운 걸 시도하려는 의욕이 결과적으로 과욕이 돼 안타깝다"며 "관람객들은 간송에 고서화를 보러 오지 현대미술과의 컬래버를 보러 오는 게 아니다. 새 진열장 등 투입된 자금은 많은데 관람료 수입이 적어 갈수록 적자가 누적됐다"고 했다.
    기고자 : 허윤희 기자
    본문자수 : 2026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