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최원석의 뉴스 저격] 중남미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5%대 … 신흥국, 디폴트 도미노 오나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발행일 : 2020.05.29 / 여론/독자 A37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코로나 폭발과 신흥국 경제

    신흥국 외환 위기의 공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의 중심지가 미국·유럽에서 브라질 등 신흥국으로 빠르게 옮아가고 있는 데다, 미·중 경제 전쟁이 격화되면서 신흥국의 달러 대비 환율 하락 우려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흥국 대외 채무는 코로나 사태 확산 속 국제 금융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중남미 등에서 코로나 확산이 멈추지 않는다면, 해당국의 경제·재정 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대외채무 불이행(디폴트)이 잇따르는 사태가 터질 수 있다. 이미 올해 5개월 동안 아르헨티나·레바논·에콰도르 등 3국이 디폴트를 선언했다. 지난 20년간 한 해에 3국이 한꺼번에 디폴트에 빠진 것은 2017년(엘살바도르·콩고·베네수엘라) 한 해밖에 없었다.

    올해 디폴트 선언 국가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파생상품 조사업체 IDD에 따르면, 신용 위험을 주고받는 신용부도스와프(CDS) 시장에서 신흥·자원국의 보증료가 고공행진 중이다. 중동 오만의 CDS(5년물) 보증료율은 지난 22일 6.12%로 2월 말의 3.25%보다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바레인도 4.8%에 달했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두 국가의 1년 내 디폴트 확률은 30% 수준이다.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올해 국채 디폴트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또 무디스는 최근 "신흥국 하이일드(고수익·고위험의 투기등급) 회사채의 디폴트 비율이 향후 1년 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의 정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회사에 따르면, 2021년 3월 말 시점에서 신흥국 하이일드 회사채의 디폴트율은 최대 13.7%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의 정점 13.6%를 웃도는 것이다.

    ◇신흥국의 확진자 폭증이 문제

    지난 24일 남미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2만6874명이었다. 같은 날 북미(2만5508명)와 유럽(1만5849명)의 신규 확진자 수를 넘어섰다. 앞서 지난 21일에는 남미의 신규 확진자 수가 3만명을 넘었다. 브라질뿐이 아니다. 이달 들어 페루·칠레·에콰도르도 확진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브라질·페루의 경우 코로나 사망자가 2주마다 2배로 늘어나고 있는데, 미국·영국이 2개월 만에 사망자가 2배로 증가한 것에 비해 엄청난 속도다. 페루·칠레는 현재 인구 300명당 1명꼴로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뒤늦게 코로나가 퍼졌음에도 인구 대비 확진자 수가 이탈리아나 영국을 넘어섰다.브라질 등 중남미를 중심으로 신흥국의 코로나 감염이 무섭게 확산되면서, 세계 신규 코로나 확진자는 지난 21일과 22일 이틀 연속 10만 명을 넘어 과거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브라질은 현재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가 2만명이다. 28일 현재 누적 확진자도 41만명으로 미국에 이어 2위다.

    사망자도 다시 증가세다. 지난 22일의 전 세계 코로나 사망자는 일주일 만에 다시 5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17일(3300명)에는 4월 중순 기록했던 고점의 40% 수준까지 억제됐지만 하루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온 브라질 등 신흥국이 전체 사망자 숫자를 밀어올렸다. 지난 24일 브라질의 하루 사망자는 미국을 넘어 세계 1위였다.

    인도·인도네시아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인도의 하루 확진자는 두 달 전인 3월 24일 20명에 불과했지만, 5월 24일엔 7100명으로 일별 최대치를 기록했다. 아시아에선 처음으로 누적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었고, 28일 현재 16만명으로 아시아에서 최악(10위)이다. 인도네시아도 28일 현재 누적 확진자 수가 2만4000명을 기록했다.

    ◇가장 먼저 금융 부문에 쇼크

    신흥국의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먼저 금융 쇼크가 일어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하면, 코로나 쇼크에 의한 신흥국 자금 유출액은 1000억달러(약 124조원)로 2008년 금융 위기 때를 넘어섰다.

    터키에서도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려고 금리를 계속 내리자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터키 통화인 리라의 달러 대비 환율은 이달 들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중앙은행이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 달러를 내다 팔면서, 외환 보유고는 이달 8일 시점에서 510억달러로 연초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단기 외채가 1200억달러까지 불어나면서 디폴트 우려도 커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통화 랜드도 연초보다 24%나 하락해 사상 최저 수준이다. 자원 가격 하락 등의 영향으로 작년 말부터 마이너스 성장에 빠진 데 이어 상황이 더 악화됐다. 적자 국영기업을 정부가 구제하면서, 국가 빚이 GDP의 60%를 넘어섰고 국채는 투자부적격 수준으로 떨어졌다. 코로나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돼 올해 재정·경상의 쌍둥이 적자에 대한 투자자 우려가 커지면서 통화 가치 하락과 자금 유출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자금 유출뿐 아니라, 미·중 경제 전쟁으로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도 신흥국 통화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신흥국이 세계적 저금리에 힘입어 조달해 온 미국 달러화 표시 채무의 상환 부담이 커진다. 주요 신흥국의 달러 대비 통화 가치는 연초 대비 10~30%씩 떨어졌다. 브라질이 31%, 멕시코가 18%, 러시아가 15% 하락했다.

    ◇GDP 하락, 재정 악화… 실물경제 붕괴

    국제통화기금(IMF)의 올 4월 전망치에 따르면 중남미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5.2%로 다른 신흥국들보다 하락 폭이 크다. 이 전망은 신흥국에 코로나가 확산되기 전의 추정치이기 때문에, 이후 나올 전망치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유엔 추계로는 수출·관광객 감소로 인해 올해 중남미 실업률이 11.5%로 2019년보다 3.4%포인트나 악화돼 2900만명이 빈곤층에 새로 진입할 전망이다. 게다가 코로나가 확산 중인데도 브라질·멕시코·페루 등이 단계적 경제 재개 조치에 나서고 있어 중남미 감염이 더 폭발할 우려도 있다. 인도 중앙은행도 경제활동 정체로 인해 올해 실질 GDP가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4월에는 수출이 36%, 수입이 47%나 감소했다.

    신흥국들은 코로나 사태와 수요 침체에 대응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다. 자금 유출과 통화 가치 하락에 이어 재정 악화의 3중고와 맞서야 할 처지다. IMF에 따르면 신흥국의 GDP 대비 정부채무 비율은 현재 평균 62%로 10년 전의 38%에서 크게 증가했다.

    [그래픽] 신흥국의 달러 대비 자국 통화 가치 증감률과 올해 예상 GDP 성장률

    [그래픽] 브라질의 일별 코로나 확진자 수 / 2019년 신흥국의 보유 외환 대비 총 외채 비율

    [그래픽] 연도별 채무 불이행 국가

    [1820년대→1850년대→대공황→1990년대… 신흥국 외환위기는 반복됐다]

    신흥국이 외환 위기, 즉 대외채무 불이행(디폴트)에 빠지는 일은 19세기 이래 반복됐다. 최초의 신흥국 외환 위기는 18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포르투갈에서 독립한 중남미 국가의 정부·광산 회사는 당시 국제금융 중심이었던 런던 시장에서 외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당시 영국의 대표 국채였던 '콘솔채' 수익률이 연 5%에서 3.5%로 낮아졌는데,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 전비(戰費) 지출이 감소한 덕분에 높은 이자로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콘솔채 수익률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수익률이 높은 중남미 채권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남미 채권 버블은 1825년 무렵 붕괴됐다. 페루·콜롬비아 등이 과잉 채무로 원리금 상환을 못하게 되자 이 국가들의 채권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도 주가가 급락했고 결국 공황으로 이어졌다. 1820년대 후반에는 브라질을 제외한 모든 중남미 국가가 디폴트에 빠졌다. 1850년대에도 영국에서 대외투자 붐이 일었는데 그때도 중남미에서 디폴트가 발생했다.

    역사상 신흥국 디폴트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은 대공황 때였다. 1차 대전 이후 국제금융 중심이 된 뉴욕에서 중남미와 중·동유럽 국가의 달러 표시 채권이 대거 발행됐는데, 전시 국채 등으로 재미를 본 미국의 투자자들이 이 국가들의 고이율 채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1929년 주가가 폭락해 기업·은행 도산이 줄을 잇자 신흥국 투자금 회수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신흥국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까지 발생하면서 자국 통화 기준 대외 채무가 부풀어올랐고, 중남미를 중심으로 연쇄 디폴트가 발생했다.

    신흥국이 디폴트에 빠지는 일은 최근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94년엔 멕시코 외환 위기, 1997년엔 태국 바트화 폭락을 신호탄으로 인도네시아·한국 등에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며 아시아 경제 성장에 급제동이 걸렸다. 당시 한국은 210억달러의 IMF 구제금융을 받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 불똥이 튀어 1998년 러시아 디폴트, 2002년 브라질 디폴트 위기로 이어졌다. 1827년부터 2014년까지 무려 8번 디폴트에 빠졌던 아르헨티나는 최근 역대 9번째 디폴트를 선언했다.
    기고자 :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449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