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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40] 타액은 지옥이다

    정상혁 문화부 기자

    발행일 : 2020.05.29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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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야구 중계를 보며 가끔 경탄했다. 타석에 선 순간부터 쉬지 않고 침을 뱉어대면서도, 경기 내내 조금도 줄지 않는 타자들의 침 분비량 때문이었다. 나는 몸집에 맞게 비대해진 그들의 침샘을 상상하곤 했는데, 물론 보기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장갑에 침을 뱉은 뒤 그것을 비빌 때였다. 가상의 고린내를 내 예민한 비강 점막은 견디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 많은 침을 죄다 삼켜야 한다. 최근 한국과 대만, 미국 프로야구 모두 경기장 내 침 뱉기 금지 규정을 세웠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위생 문제 탓이다. 모두가 조금은 유난한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달 초 영국에서 한 역무원이 코로나 바이러스 보균자가 뱉은 침에 맞아 감염돼 사망했다. 침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가장 명확한 실례를 현재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침은 몇 달 새 지역 맘카페에서도 심각한 화두였다. "엘리베이터에 누군가 상습적으로 침을 뱉는다" 같은 글이 자주 올라왔다. 누가 재채기하면 머릿속에 에어로졸(aerosol)까지 자동으로 그려지는 시국이기에, 너나없이 격노해 댓글로 침을 뱉어댔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썼을 때 그 말이 타자(他者)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간섭에 대한 유비(類比)였다면, 이제는 바이러스라는 실존 탓에 일상을 장악한 구체적 혐오가 되고 말았다.

    타액이 지옥이 된 지금 풍속에서, 가장 손쉽게 미움의 대상이 되는 방법은 길바닥에 침 뱉는 일일 것이다. 며칠 전 출근길 회사 앞 지근거리에서 "칵, 퉤!" 소리를 듣고 움찔했다. "이 시국에…." 조심성 없는 질퍽한 사운드에 적개심까지 일었다. 곧잘 흡연 구역이 되곤 하는 전봇대 근처나 골목 구석뿐 아니라 대로변 횡단보도 같은 데서도 습관성 침 뱉기를 마주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괄약근이 없어 자기도 모르게 변을 지리는 한 마리 비둘기를 떠올리게 된다.

    웬만한 문명 세계에서 침 뱉기는 도발이나 모욕을 의미한다. 적을 붙잡아 처형하기 전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삼국시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 상징의 역사가 최소 1000년은 넘었다. 오늘날에도 침 잘못 뱉었다간 곤욕을 면치 못한다. 현행 경범죄 처벌법은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에서 함부로 침을 뱉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하는 사람을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침과 대소변이 한 범주에 묶여 있다. 무심코 뱉었다가는 입으로 똥오줌을 싸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분별없는 분변(糞便)은 누워서 침 뱉기지만, 침 자체는 죄가 없다. 99%가 수분이고 심지어 1%의 성분이 세정제 역할을 해 치아 질환을 방지한다. 2년 전 포르투갈 리스본대학 연구팀은 침 속 소화 효소가 예술품의 오염된 표면을 깨끗이 닦아내는 데 탁월하다는 사실을 밝혀내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그노벨상' 화학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침에 상처 회복을 촉진하는 단백질(히스타틴)이 함유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네덜란드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 귀한 것을 굳이 오물 취급 받게 할 까닭이 없다.

    얼마 전 'TV 진품명품'을 시청하다 감정품으로 나온 조선시대 타구(唾具) 한 점을 봤다. 타구는 침을 뱉는 일종의 요강이다. 술잔처럼 생긴 백자 두 개를 아래위로 이어붙인 것이었는데, 그 안에 긴 구멍을 내 가래나 침을 모았다고 한다. 옛 조상이 도야(陶冶)한 그 작은 형상을 보며, 자기만의 방에서 고요히 그릇에 침을 흘려 보내는 가장 우아한 형태의 침 뱉기를 떠올리게 된다. 그간 우리는 너무 쉽게 내뱉어 온 것이다.
    기고자 : 정상혁 문화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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