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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코로나로 연기된 콩쿠르

    김주영 피아니스트

    발행일 : 2020.05.29 / 특집 A3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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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단된 '꿈의 무대'… 과거엔 쇼팽 생일·전쟁으로 미뤄졌죠

    올해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은 우리 일상을 정말 많이 바꿔놓았습니다.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 경연대회들도 속속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을 겪고 있죠.

    이른바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라 불리는 대회는 폴란드의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벨기에의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입니다. 이 가운데 쇼팽 콩쿠르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원래 개최하려던 경연 일정을 1년 후로 연기했어요. 특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성악의 순서로 매년 부문을 바꿔가며 열리는데, 올해 개최 예정이던 피아노 경연이 1년 늦춰지면서 다른 부문들도 차례로 밀리게 됐습니다. 폴란드의 음악적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쇼팽 콩쿠르도 10월 17일 사망한 쇼팽(1810~1849)의 기일을 전후해 치러지던 전통을 이번에는 뛰어넘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음악 콩쿠르의 연기 사태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닙니다. 20세기 초 시작해 세계 최고라는 권위를 얻기까지, 음악으로 진검 승부를 벌이는 젊은 음악도들의 무대는 여러 우여곡절을 헤쳐왔어요.

    전쟁으로 열리지 못한 퀸 엘리자베스

    벨기에를 대표하는 음악 행사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의 이름은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의 왕비 엘리자베스(1876~1965)를 기념하기 위해 붙여졌습니다. 19세기 말 '바이올린의 황제'라고 불렸던 벨기에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외젠 이자이(Ysaye·1858~1931)는 말년에 젊은 음악인들을 위한 경연대회를 만들고 싶어했죠. 바이올린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엘리자베스 왕비는 이자이의 요청에 화답해 대회의 후원인이 돼 주었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자이는 콩쿠르 시작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1937년 열린 첫 번째 콩쿠르 때 '이자이 콩쿠르'라는 이름으로 불렀어요. 첫 대회는 바이올린 부문, 이듬해에는 피아노 부문 대회가 열렸고 바이올린의 다비트 오이스트라흐(1908~1974), 피아노의 에밀 길렐스(1916~1985)가 그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은 구(舊)소련의 전설적인 음악가로 남은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이자이 콩쿠르는 한동안 열리지 못했습니다.

    전 유럽을 초토화한 전쟁이 끝나고 콩쿠르가 다시 열리게 된 것은 1951년입니다. 그때부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로 불리기 시작했어요. 이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시간이 지나며 참가 부문을 점점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성악 부문이 신설됐고 2017년 첼로 부문이 시작됐죠. 그야말로 '종합 음악대회'라고 할 수 있는 큰 규모입니다.

    대부분의 콩쿠르가 2주 남짓 열리는 데 반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 달 가까이 소요되는데요. 그 이유는 자신이 준비해온 협주곡 1곡 외에 대회 주최 측이 준비한 신작을 짧은 시간 동안 익혀서 연주해야 하는 과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약 12명의 결선 진출 경연자는 1939년 세워진 '퀸 엘리자베스 뮤직 샤펠'이란 건물에 8일간 묵으면서 최종 라운드를 준비합니다. 여기서 경연자들은 휴대전화도 반납하고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해요. 그래서 더욱 어려운 콩쿠르로 인식됩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국 음악가들과도 인연이 깊어서, 성악 부문 홍혜란(2011년)·황수미(2014년), 바이올린 임지영(2015년) 등이 1위를 차지해 전 세계 청중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쇼팽 생일에 맞추려 1년 미루기도

    피아니스트들에게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쇼팽 국제 콩쿠르는 작곡가의 조국 폴란드에서 1927년 처음 열렸습니다. 처음 대회의 아이디어를 낸 피아니스트 예지 주라블레프는 쇼팽의 제자였던 알렉산더 미할로프스키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는데요. 1차 세계대전(1914~1918) 후 20세기 음악계에 감도는 새로운 조류를 감지하고 왜곡과 과장 없이 순수하게 쇼팽 음악을 해석해보려는 의도로 콩쿠르를 계획했어요.

    1927년 1월 열린 첫 대회에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이 1위를 차지했고, 이후 5년 주기로 대회가 열렸습니다. 1932년과 1937년 2~3회 대회를 거치며 콩쿠르는 동유럽을 대표하는 경연대회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하지만 쇼팽 콩쿠르 역시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요. 종전 후 대회가 다시 열린 것은 1949년 9월, 쇼팽이 사망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대회인 제5회 쇼팽 콩쿠르는 5년 후인 1954년이 아니라 1년 더 미뤄진 1955년 2월 말에 열렸어요. 3월 1일인 쇼팽의 생일을 기념하고, 다가올 쇼팽 탄생 150주년(1960년)에 맞춰 대회를 열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콩쿠르가 매년 가을 쇼팽 기일에 맞춰 열리게 된 것은 1970년 대회 이후입니다.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쇼팽 콩쿠르는 피아니스트들의 공인된 신인 등용문이자 가장 어려운 대회로 꼽힙니다. 무엇보다 쇼팽 한 사람의 작품만을 연주해야 하는 대회 규정과 심사위원 중 많은 수를 차지하는 폴란드인들의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죠.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 이 콩쿠르를 통해 스타가 된 피아니스트는 셀 수 없이 많아요. 쇼팽 콩쿠르는 아시아인들이 여러 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1980년 베트남 출신의 당타이손, 2000년 중국의 윤디 리, 2015년 우리나라의 조성진이 1위를 차지했고 모두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젊은 음악가들의 열정은 결코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루빨리 무대에서 새로운 스타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습니다.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2006년 월드컵 때 1년 연기]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4년마다 열리는데, 지난해 열려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피해를 받지 않았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8년 시작된 이 대회도 불가피하게 한 차례 일정이 변경되는 일이 있었는데요. 6월에 열리던 콩쿠르가 2002년 대회 이후에 5년 만인 2007년 개최된 것이죠. 이유는 주요 결선이 펼쳐지는 모스크바 음악원 대강당 도서관이 당시 큰 화재를 겪어 대대적 보수가 필요했고, 매번 월드컵 축구 경기와 개최 시기가 겹치는 문제 때문에 콩쿠르가 제대로 주목을 받기 어려워 경연 주기를 바꿔야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해요.
    기고자 : 김주영 피아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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