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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보궐선거 당선자] (6) 이상익 함평군수

    함평=조홍복 기자

    발행일 : 2020.05.29 / 사회 A1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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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이장에서 41년만에 군수로… "2년치 월급 함평에 기부했습니다"

    판소리 단가(短歌) '호남가(湖南歌)'는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로 시작한다. 호남 제일의 고장으로 함평이 거론된 것이다. 예부터 두루 화평하고 부족함 없이 풍년이 깃든 곳이 함평이었다. 지난 4월 15일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상익(64·사진) 전남 함평군수는 다음 날 출근해 "함평의 이름대로 넉넉하고 조화롭게,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군수는 20대 젊은 나이에 이장을 지내고 41년 만에 집행부 수장에 올랐다. 본지가 이 군수를 인터뷰한 지난 20일은 첫 월급날이었다. 이 군수는 "나부터 솔선수범하겠다"며 "봉사하는 마음으로 2년여 임기 급여는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월급 800만원을 포함해 26개월치 급여 2억800만원 전액을 함평 지역 학생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관사도 주민이 이용하는 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이장 출신 군수라 군민 곁에 잘 다가선다는 평가가 있다.

    "함평읍 수호리에서 나고 자랐다. 1979년 10월 제대하니 20~40대 젊은 주민이 10여명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마을의 리더가 돼 달라'고 이장직을 맡겼다. 그로부터 10년 넘게 마을을 위해 봉사했다. 그때만 해도 군수가 될 줄은 몰랐다. 중간에 유통 사업을 하느라 이장을 못 하게 됐는데도 동네 어른들이 '당신 아니면 믿을 사람이 없다'고 부탁했다. 그래서 젊은 이장 타이틀을 10년 이상 달고 살았다. 20·30대에 겪었던 마을 봉사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철학의 밑거름이 됐다."

    ―농업 유통 전문가로 36년을 일하다 군수로 변신했는데.

    "1982년 농어민 후계자가 됐다. 이듬해 1만6528㎡(5000평) 밭을 일궈 고구마를 수확했다. 하지만 유통업자에게 속아서 수백만원을 뜯겼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분했다. 1984년 10월 직접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삼영미곡상회를 만들었다. 2004년 사업을 키워서 삼영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함평은 농·축산업이 주력이다. 35년 농업 유통 전문가로서 유통 업계를 혁신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

    "친환경 농축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 생산비가 든 만큼 제값을 받도록 유통 구조 다변화를 꾀하겠다. 전국을 무대로 한 직거래 장터 확대를 유도하겠다. 개별 농가의 일반벼 전량 매수와 양파 가격 보장제 도입도 농협과 함께 이뤄내겠다.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 이전, 농산물가공센터 군 직영화, 국가 축산정책 사업 유치 등도 추진한다."

    ―봄과 가을에 여는 나비와 국화 축제가 함평에서 가장 유명하다. 코로나 때문에 축제를 못 열게 됐는데.

    "고민이 많다. 나비축제와 국향대전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흑자 축제다. 하지만 다중이 모이는 축제만 바라볼 수 없는 시대다. '4·4·8 함평관광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4시간은 숲에서, 또 4시간은 바다에서 즐기고 나서, 8시간은 함평읍에서 자고 가라는 것이다. 1박 2일 머무는 게 핵심이라 관광 인프라 구축에 힘쓰겠다. 아름다운 산과 들, 바다를 모두 품은 함평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취임 일성으로 봉사를 강조했는데.

    "생산 라인을 함평에 둔 수출 주도용 업체를 만들려고 사업 구상을 하던 차에 선거에 나섰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 농산물 가맹점 사업이었다. 주위에서 '지역에 봉사하라'는 권유를 많이 들었다. 지금은 군수직에 집중할 때다.
    기고자 : 함평=조홍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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