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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100년, 내가 사랑한 우리말] (36) 나비

    소설가 권기태

    발행일 : 2020.07.01 / 문화 A1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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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숱한 고양이들이 '나비'라고 불린다. 큰 눈에 가벼운 흰 발, 이리저리 휘어지는 유연한 몸매의 고양이에게 딱 좋은 이름이다. 우리가 '나비'라고 불러보면 이 말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노랫말을 지으라면 나는 두 글자로 '나비'라고 지으련다. '나비'를 거듭해 부르는 것만으로 나는 희로애락을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비'는 '납'이 아니요, '나귀'도 아니다. 오로지 '나비'여서 그 속에는 가볍게 나붓거리거나 우아하게 내려앉는 움직임이 오롯이 담겼다.

    이 낱말의 뿌리는 설명이 숱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고전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와 닿는다. '날다'에 '벌레'가 더해졌다는 말씀. 그런데 왜 '날벌레'가 아니고 '나비'가 되었는가? 영국인들은 그저 버터와 드래곤에 플라이를 붙여서 버터플라이(나비)와 드래곤플라이(잠자리)라고 그대로 쓰는데.

    이곳에서 우리말을 쓰며 살아온 수억 명의 백성은 수천 년간 '나비'의 옛말들을 입 안에서 이리 띄우고 저리 굴려 보며 낱말의 번데기에서 세련되게 탈바꿈을 해낸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좀 더 두툼한 '나방'마저 '나비'에서 분리해냈다. 프랑스 말마저 이 둘을 그저 '빠삐용'(파피용)이라고만 부르는 것을 생각해보자. 나는 하늘거리는 나비를 볼 때마다 이 우아하고 완전한 이름에 감탄한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호랑나비며 제비나비 모시나비 노랑나비 배추흰나비처럼 수백 개의 이름이 가능하게 한 우리 강산이 고맙다. 중근동에서 쓰인 성경은 거룩하지만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나비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 더더욱 그랬다.

    나는 여름날 공원의 숲을 거닐 때면 가지 사이에 쳐진 희고 가느다란 선분을 모르고 끊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워한다. 반투명의 하늘하늘한 껍질에 둘러싸인 자그만 오이 같은 것이 매달렸을 수 있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흰 바탕에 호랑이 무늬 날개가 몇 겹으로 접혔고 더듬이도 주둥이도 발들도 모두 담겼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날개를 다 빼내어 말리고 하늘로 날아오를 생명. 우리가 그토록 사랑해온 '나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기고자 : 소설가 권기태
    장르 : 연재
    본문자수 : 105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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