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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사랑한 시인 백석, 그가 못다한 삶 그리고 싶었죠

    백수진 기자

    발행일 : 2020.07.01 / 문화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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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연수

    북한에서 시인 백석(1912~1996)의 삶은 실패에 가까웠다. 누구도 그를 시인으로 기억하지 않았고, 40대 후반에는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강도 삼수군 오지로 쫓겨난다. 백석이 추방됐던 나이에 접어든 소설가 김연수(50)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시인의 고뇌를 떠올렸다. 30일 만난 그는 "어렸을 땐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쓴 사람이 북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막연한 궁금증을 품었다"면서 "40대가 되고 보니 이 나이의 가장이 실패와 포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8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 백석을 모델로 한 '백기행'(백석의 본명)이 주인공이다. 시인 백석은 조선일보 기자로 근무하며 첫 시집 '사슴'을 냈고, 분단 후엔 월북 시인으로 분류돼 해금 조치 이후에야 그의 시를 접할 수 있었다. 소설은 분단 이후 북한에서 러시아 문학 번역으로 겨우 생계를 이어가던 '기행'이 다시 시를 쓰기로 마음먹은 때부터 7년의 삶을 다룬다. 김연수는 "삶을 복원하는 평전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면서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삶과 죽는 순간까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다시 펜을 들었지만, 이념과 체제 선전을 위한 사회주의 공화국의 시에 기행이 사랑했던 음식 이름이나 옛 지명들, 사투리들은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낡은 미학적 잔재" "부르주아적 개인 취미"라는 비난을 받을 뿐이었다. 김연수는 소설 속에서 그가 사랑했던 "가무락조개, 나줏손, 귀신불" 같은 단어들을 잔뜩 불러온다. "백석 초기 시를 보면 언어를 너무나 잘 다뤄요. 일부러 사투리를 가져오고 잘 모르는 조개들도 이름을 물어봐서 하나하나 다르게 써요. 이 조개와 다른 저 조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문학이거든요."

    당이 원하는 시와 자신이 원하는 시 사이에서 시인의 고뇌와 외로움은 깊어졌다. 백석은 결국 1962년 '나루터'라는 동시를 마지막으로 절필했지만, 해금 조치 후 그는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혀왔다. 김연수는 "백석이 북한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성공했다면 지금처럼 사랑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실패와 불행은 시인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보면 문학은 자기계발서와 정반대 편에 있는 장르예요. 자기계발서가 행복이란 무엇인지 찾는다면 문학은 '불행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하죠."

    김연수는 2001년 시인 이상을 다룬 소설 '?}빠이, 이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상에서 백석까지 20여 년이 흐른 셈이다. 그는 "이상에 대해 처음 쓸 때는 영원히 남는 문학의 비밀을 알고 싶었다"면서 "이상과 백석은 글을 잘 쓴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더라"고 했다. "해방되고 조금씩 변화 혹은 변질했던 다른 문인에 비해 이상은 요절했거든요. 백석도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과 다름없었죠. 죽을 길임을 알고도 가는 것이 영원히 남는 문학의 핵심인데 비밀을 알고도 실천할 수가 없네요(웃음)."

    그는 "40대 내내 비관적이었는데 이 소설을 쓰면서 용기를 얻었다"면서 "폐허 속에서도 결국 인생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이겨내더라"고 했다. "백석의 시들에서도 비애와 한탄에 차 있다가 중간에 '그런데' 하며 바뀌는 부분이 있어요. 좁고 괴로운 불행에서 기적처럼 일어서는 그의 시들에서 용기와 위로를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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