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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김태년의 '지록위마'… 레임덕의 신호탄 되나

    유석재 기자

    발행일 : 2020.09.17 / 문화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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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아는 고사성어 같지만 정작 그 맥락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인용한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란 말이 그렇다. 그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과 관련해 야당이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이 말을 갖다 썼다.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사슴)을 권력형 비리(말)로 둔갑시켰다는 얘기다.

    그런데 김 원내대표가 놓친 게 있다. 이 시점에서 '지록위마'란 말을 꺼내는 자체가 위험천만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록위마의 원전인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와 이사열전을 보면, 이는 최고 권력자의 리더십을 깎아내리려는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진행된 정치적 술책이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기원전 210년 죽자 환관 조고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하고 둘째 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웠다. 조고는 다 계획이 있었다. 어느 날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면서 "이것은 신이 드리는 말"이라고 했다. 의아해하는 황제가 대신들에게 물어보니 황제보다 조고의 위세를 두려워한 많은 대신들이 "말"이라고 했다.

    스스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한 황제는 점을 치는 관리인 태복(太卜)을 불렀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조고가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지만, 태복은 어처구니없게도 "(말이 사슴으로 보이는 것은) 폐하께서 제사를 지낼 때 재계(齋戒·몸과 마음을 깨끗이 함)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고 했다.

    재계를 핑계로 숲속에서 사냥을 일삼던 황제는 실수로 지나가던 민간인을 활로 쏴 죽였고, 조고는 "하늘이 재앙을 내릴 것"이라며 궁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기도 시작 3일 만에 조고는 "도적떼가 쳐들어왔다"고 속여 황제를 자살하게 했다.

    이 과정을 정리해 보면, ①어처구니없는 말을 진실로 포장해 최고 권력자를 기만한 뒤→②정치에서 뜻을 잃게 하고→③사실상 유폐하고 나서→④권력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상실케 하는 프로젝트의 시작이 '지록위마'였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레임덕의 정석(定石)인 셈이다. '지록위마'란 고사를 끌어다 쓴 것 자체가 현 정권의 리더십 위기를 은연중 보여준 건 아닐까.

    기고자 : 유석재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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