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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현관문을 열 수 있지만, 영국에서 현관문을 여는 특권을 누리려면 21세가 되어야 한다. 리버풀 출신 음악가 앨릭 켄들이 1911년 작곡한 'I'm Twenty One Today(오늘 난 21세가 되었네)'라는 노래가 있다. "I've got the key of the door. Never been 21 before!(21세가 되고서야, 나는 집 열쇠를 받았다!)"

1970년까지 영국에서 법적인 성인이 되는 나이는 21세였다. 당시 부모들은 자녀가 21세가 되기 전까지는 집 열쇠를 절대로 주지 않았다. 현실적인 이유로 상황은 바뀌었다. 내 경우엔 상급학교에 진학하자 일을 시작하셨던 어머니 덕에 14세 때 집 열쇠를 받았다. 이제 영국에서 21세의 나이에 열쇠를 받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다. 부모들은 성년이 되는 자녀에게 진짜 열쇠 대신 목걸이나 팔찌에 걸 수 있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열쇠를 선물한다.

최근 한국 건설 회사들은 새롭게 건설되는 아파트에 스마트폰을 열 때 사용되는 홍채나 안면 인식 같은 최첨단 기술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들조차 배터리와 비밀번호로 작동되는 도어록을 쓴다. 반면 영국에서는 최고 부유층이나 왕족도 여전히 수백만 파운드짜리 저택의 문 단속에 열쇠를 쓴다. 사실 큰 집에 살수록 더 무거운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영국인들은 왜 이런 불편함을 고수하는가?

열쇠의 단점은 셀 수도 없다. 쉽게 녹슬고 비위생적이다. 잃어버리기 쉽고 복제도 쉽다.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들은 주기적으로 열쇠를 잃어버려 고생하고, 어린아이들도 무거운 열쇠를 사용하느라 쩔쩔맨다.

나는 열쇠를 엄청나게 싫어한다. 하지만 영국을 떠나 한국에 살기 전에는 열쇠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매번 영국을 방문할 때마다 금속 열쇠를 보면 다시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영국이 석기시대의 벽지(僻地)는 아니다. 영국에도 물론 안면 인식 기술이 있지만 영국인은 미학적인 측면을 가장 중시한다. 대부분 건축업자나 집주인은 21세기 문물처럼 보이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커다란 안면 인식 LED 패널이나 터치 스크린은 한국의 초현대식 아파트에는 어울리겠지만,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집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사는 영국의 붉은 벽돌집 앞에선 다소 흉측해 보일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정원에 새롭게 돌을 깔거나, 차고를 생활 공간으로 개조하거나, 지붕의 타일을 손보며 평생 집을 조금씩 고쳐나간다. 코로나 봉쇄 기간에도 영국인은 1주일에 10시간쯤을 DIY로 집단장을 하며 보냈다고 한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한 철물 장인이 여전히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자물쇠 '처브 레버 텀블러 록(the Chubb lever tumbler lock)'으로 특허를 받은 것은 빅토리아 여왕 출생 바로 직전 해인 1818년이었다. 당시는 영국의 황금기였다. 산업혁명을 이끌면서 글로벌 파워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고 영국의 건축 또한 전성기를 맞았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오래 전이지만, 황금기의 건축 양식만은 사라지는 것을 거부한다. '처브 록'의 독특하고 깊은 열쇠 구멍과 특유의 긴 열쇠는 영국식 문의 미학을 완성하는 작지만 필수적인 요소다.

한국식 편리함에 길든 나는, 영국에서 집을 사게 된다면 제일 먼저 고풍스러운 '처브 록' 대신 최첨단 디지털 도어록으로 바꿔 달 것이다. 번쩍거리는 검은 터치 스크린과 카메라가 브론테 자매의 소설 표지에 등장할 듯한 고풍스러운 집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만, 나는 이미 '광명'을 보았다. 더 이상 열쇠의 악몽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

기고자 : 팀 알퍼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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