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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작품상 누구 품에 안길까

무게 3.85㎏에 높이 34㎝. 오는 25일(현지 시각) 이 금빛 오스카 트로피의 주인이 호명된다. 93회를 맞는 올해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작품상 후보에 오른 ‘미나리’의 경쟁작들을 총정리한다. 조선일보 영화팀과 정지욱·윤성은 영화평론가가 20자평과 별점을 매겼다.

[더 파더] 앤서니 홉킨스의 오열을 보라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인 영화 '더 파더'에서는 비제의 프랑스 오페라 '진주잡이'의 아리아가 반복적으로 흐른다. "아직도 들리는 것 같네(Je crois entendre encore). 종려나무 아래서 부드럽게 울리는 그녀의 음성. 비둘기의 노래 같네." 영국 런던의 아파트에 홀로 사는 80대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가 즐겨 듣는 오페라 아리아다. 언뜻 사랑의 노래 같지만, 실은 그의 강박증을 설명하는 극적 장치가 된다.

괴팍스럽고 고집불통인 앤서니는 자신을 돌보러 오는 간병인들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위협해서 내쫓기 일쑤다. 처음엔 그저 고약한 성미 탓이라고 여겼지만, 알고 보니 알츠하이머 증세다. 급기야 딸 앤(올리비아 콜먼)의 얼굴과 이름도 혼동하기 시작한다. 영화에서 앤서니가 집착하는 것이 시계와 아파트다. 시계가 시간이라면, 아파트는 공간의 상징이다. 그를 둘러싼 시공간의 뒤틀림과 혼동을 암시한다.

프랑스 출신 극작가 플로리안 젤러의 2012년 동명 희곡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아파트라는 단일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극히 연극적이다. 젤러는 영화의 연출도 직접 맡았다. 원작 희곡에서 '앙드레'였던 주인공의 이름은 '앤서니'로 바뀌었다. 템포는 정적이고 반복적이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연출된 계산이라는 사실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자연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명암 대비를 부각한 조명도 빼어나다.

앤서니 홉킨스는 1992년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뒤, 이 영화로 29년 만에 같은 부문에 재도전한다. 그는 흡사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 왕'을 연기하듯이 고전적 품격을 담아서 연기한다. 특히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며 오열하는 후반 10여 분을 보고 있으면, 게리 올드먼('맹크')이나 스티븐 연('미나리') 같은 경쟁자들도 감동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미스터리 심리극에서 출발한 영화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묵직한 질문으로 끝난다. 극적인 반전(反轉)과 주제의 보편성이야말로 수작(秀作)의 필수 조건. 1인 가구와 고령화의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더 파더’ 20자평

영화평론가 윤성은 ★★★
뒤엉킨 머릿속을 체험하게 하는 100가지 영화적 장치들.

영화평론가 정지욱 ★★★★☆
노년의 삶을 정통적 영화 화법으로 촘촘히 담아낸 신공.

[노매드랜드] 밴에서 먹고 자는 삶, 美國의 성찰

이 영화는 낯선 길을 정처 없이 달리는 작은 밴(van)을 자주 보여준다. 여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이 '선구자'라 이름 붙인 그것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다. 먹고 자고 볼일도 보는 '바퀴 달린 집'이다. 남편과 사별한 펀은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경제적으로 붕괴한 중서부 작은 도시를 떠나 홀로 밴을 타고 유목민처럼 떠돈다.

'노매드랜드(Nomadland)'는 보통의 삶과는 다른 이야기를 수프처럼 뭉근하게 끓여냈다. '길 위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이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유랑족들은 초기 개척민들과 비슷해요. 미국의 전통을 잇고 있는 거죠"라는 대사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중국인 여성 감독 클로이 자오는 이 영화로 올해 골든글로브 작품상·감독상을 받았다.

'파고'와 '스리 빌보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 받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용감하면서도 정직한 펀을 이물감 없이 살아냈다. 새로운 생명체를 보듯이 돌들을 관찰하고, 친구 스완키(샬린 스완키)가 준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기억되는 한 살아 있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되뇐다. 바닷가에서 사납게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볼 때도 그녀는 외롭지 않고 강인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밤에 일어난다. 펀이 캠핑장에서 "해피 뉴 이어(happy new year)!"를 외치며 폭죽에 불을 밝히고 난 다음이다. 죽음을 예감하고 병원 대신 알래스카로 간 스완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모닥불에 차례로 돌을 던진다. 불씨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카메라가 포착한다.

우리는 사실 하늘에서 태어났다. 과거에 죽은 별들의 유물이다. 피에 든 철, 뼛속의 칼슘, 허파를 채우는 산소 등은 별들이 늙어 소멸할 때 공간 속으로 흩어진 것이다. 유랑족끼리는 작별인사를 안 하는데, 언젠가 길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노매드랜드'는 사색적이고 희망적인 드라마다. 굵직한 사건이나 반전은 없다. 미국 자본주의를 성찰하는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에 근접해 있지만 한국 관객에겐 거꾸로 따분할 수 있다.

윤성은 ★★★★☆
떠나야만 평안하고 이별해야만 만날 수 있는 삶에 대한 서정적 르포.

정지욱 ★★★★
자발적 유랑의 삶에 대한 절대 지침서.

[맹크] 고전 '시민 케인' 걸작이 되기까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맹크'는 올해 아카데미 최다(最多)인 10부문 후보에 올랐다. 아카데미가 이 흑백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영화사를 80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1941년 당시 26세의 오손 웰스가 연출·주연·제작까지 도맡았던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걸작이 '시민 케인'이다. '맹크'는 이 작품의 탄생 비화를 다룬다. 우리 식으로는 나운규의 '아리랑'이나 임권택의 '서편제'가 만들어진 배경을 추적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작품 제목은 '시민 케인'의 대본 작가였던 허먼 맹키위츠의 애칭. 맹크 역의 배우 게리 올드먼은 교통사고로 침대에 누워서 시나리오를 구술하거나 술 마시는 연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작가의 모습을 훌륭하게 되살렸다. 올해는 어쩌면 누워서 연기했던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는 진풍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윤성은 ★★★★
그때 그 시절, 할리우드와 미국 정치사를 채운 견고한 자물쇠

정지욱 ★★★☆
'시민 케인'의 찬사를 넘어, 미국 사회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

[프라미싱 영 우먼] 상처 입은 여성, 복수의 화신 되다

미 할리우드에서 비롯한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의 영향이 드러난 작품. 의대를 중퇴하고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는 캐시(캐리 멀리건)는 밤마다 술에 취한 남성들에게 접근한다. 실은 7년 전 자신의 친한 친구가 겪은 끔찍한 사건에 충격을 받고서 치밀하게 꾸민 일종의 '복수극'이다. 이상야릇한 행동 이면에 숨은 사연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캐시가 겪어야 했던 남모르는 고통이 드러난다.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 역을 맡았던 멀리건이 이번 영화에서는 제대로 망가지는 연기를 선보였다.

남성 중심적 관점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스릴러물을 여성의 이야기로 바꿔낸 환골탈태의 발상이 돋보인다. 다만 멜로와 복수극 사이에서 엉거주춤, 결말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윤성은 ★★☆
속 시원한 메시지와 거북한 직설 화법의 아슬아슬한 동행

정지욱 ★★★☆
전형을 뛰어넘어 복수를 실행하는, 하지만 또 그만큼 아쉬운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웨스트 윙' 작가, 현란한 말의 홍수

미 드라마 '웨스트 윙'과 '뉴스룸'의 각본을 쓴 에런 소킨이 연출한 작품. 영화 '머니볼'과 '소셜 네트워크'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소킨은 최근 영화 연출에도 욕심을 내고 있다. 그의 드라마와 영화는 무엇보다 초반부터 등장인물들이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말의 향연이다. 그렇기에 법정극과 잘 어울리는 속성이 있다. 1968년 미 대선 후보 경선을 위한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시위 사태를 다룬 작품. 평화롭게 시작했던 학생들의 반전(反戰) 시위는 폭력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당시 시위 주도자 7명에 대한 재판이 영화의 제목이다.

소킨이 각본을 썼던 1992년 법정극 '어 퓨 굿맨'을 현대 배경의 시대극으로 바꿔낸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소킨이 친(親)오바마, 반(反)트럼프 입장을 밝혔던 미 민주당 지지자라는 사실은 감안하는 편이 좋다.

윤성은 ★★★☆
법과 권력, 정의와 폭력에 대한 뜨겁고 지적인 토론

정지욱 ★★★★
미국 최악의 재판을 현재적 시선으로 파헤쳤다

[사운드 오브 메탈] 청력 잃은 록 음악인의 홀로서기

헤비메탈 그룹에서 드럼을 치던 '루벤'(리즈 아메드)은 어느날 청력 상실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함께 활동하던 연인 루(올리비아 쿠크)마저 솔로 활동을 위해 떠나면서 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에 빠져든다.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은 록 음악 중에서도 가장 시끄럽고 공격적인 헤비메탈과 청력 상실의 극단적 대비를 통해서 소리와 침묵의 상관관계를 살핀 작품. 얼핏 음악 영화 같지만, 역경을 받아들이고 홀로 서는 법을 익히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삶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24일 만에 촬영을 마친 저예산 영화. 수화로 의사 소통하는 청각 장애인 공동체를 표현하기 위해 작품에도 실제 청각 장애인들을 캐스팅했다. 파키스탄계 영국 배우인 리즈 아메드는 굉음과 적막의 양극단을 넘나드는 열연으로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첫 무슬림(이슬람 교도)이 됐다.

윤성은 ★★★
사운드에 관한 대담한 실험으로 건강한 정신(Sound of mental)을 이야기하다.

[그래픽]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