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노정태 옮김｜부키｜360쪽｜1만9800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30년 만에 증세안을 내놓았다. 곧바로 다음날 미국 재무부는 135개 국가에 공문을 보내 일정 기준의 수익과 수익률을 충족하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법인세를 내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국가별로 제각각인 법인세의 하한선을 설정하자는 '글로벌 법인세' 논의가 본격화한 것이다.

이런 변화의 맥을 짚어줄만한 책이 나왔다.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는'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와 오랜 공동 연구를 진행해온 저자 이매뉴얼 사에즈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와 그의 대학 동료 게이브리얼 저크먼 교수가 썼다. 조세 피난처를 무력화하기 위한 '글로벌 법인세' 최저 세율 도입은 2019년 저자들이 이 책에서 주장한 방안 중 하나다.

저자들은 1913년부터 2018년까지 약 100년 동안의 미국의 법인세·소득세·재산세 관련 통계를 분석하며 '가난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게 내고, 소득에 따라 세율이 증가한다'는 기존 견해를 논박한다.

먼저 법인세 얘기부터. 페이스북 창업주 저커버그는 600억달러(약 66조원) 이상의 자산가이지만 지난 10년 동안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연봉을 1달러씩 받으니 소득세는 없고, 20%를 가진 페이스북 주식은 배당금이 없어 역시 소득세를 물지 않는다. 실제 그가 생활에 사용하는 돈은 회사에서 '경비' 명목으로 지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것은 페이스북의 법인세뿐인데, 2018년 200억달러의 수익을 올린 페이스북은 법인세율이 '0(제로)'에 가까운 영국령 케이먼제도에 세운 법인으로 대부분의 수익을 돌려놓았다. 저자들은 "저커버그는 4조원을 벌었지만, 소득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바이든 정부의 '글로벌 법인세'는 다국적 기업들의 '합법적 절세'에 제동을 걸기 위한 장치다. 실제로 애플·구글 같은 거대 기업도 조세 피난처를 활용하고 있다.

조세 피난처가 아닌 일반 국가들도 기업 유치를 위해 앞다퉈 법인세 인하 경쟁에 돌입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1985년 49%에 달했던 전 세계 평균 법인세율은 2018년 24%로,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자들은 "만약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21세기 중반에는 법인세율 평균이 0%에 도달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기업이 합법적으로 '절세'하는 이 세금은 결국 다른 납세자의 부담이 된다는 것이 저자들의 비판이다. 바로 월급쟁이다. "그 어떤 면제, 공제, 세율 할인, 기타 혜택도 전혀 받지 못하는 단 하나의 소득 항목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임금이다." 월급쟁이는 유리 지갑에서 돈을 다 뜯기는데, 미국은 '부자 감세'를 통해 수퍼 리치(미국 상위 400대 부자)의 소득세를 오히려 줄여줬다. 저자의 분석으로는 1970년대 미국 최상류층은 소득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냈다. 그러나 2018년 이후 미국 최상류층의 소득세율은 23%로 미국 전체 평균 28%보다 낮은 상태다. 절대적으로 내는 액수는 물론 부자가 더 많지만, 생계가 어려운 저소득층이 더 높은 세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2018년에는 지난 100년 이래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일가, 워런 버핏 등의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비서보다 상대적으로 세금을 덜 내는(세율이 낮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처럼, 저자들도 미국 부자들의 소득세율이 90%에 달했던 1950년대에 부(富)의 분배가 잘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월급쟁이 중산층보다는 초고소득층의 세금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상위 400명 부자는 주식 같은 금융자산 보유액을 포함한 전체 자산규모의 2~10%를 매년 '부유세'로 걷는 방안 등을 제안한다. 저자들은 "중산층은 이미 중산층의 부유세로 재산세를 내고 있다"며 "대부분의 부를 금융자산 형태로 지닌 부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조세제도가 불평등의 핵심 원인'이라는 일종의 환원론 때문에 논의가 세금을 걷는 방식에만 집중됐다는 점은 한계다. '어떻게 걷을 것인가'보다 때로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하지만 이 점은 이 책의 논의에 들어 있지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대책이 실현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특히 '부유세'의 경우 보유 주식의 가치까지 평가해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뭇 논쟁적이다. "절세가 폭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탈세가 전염병처럼 창궐하고 있는 것"이라는 저자들의 입장 역시 이념적 편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골치 아픈 세금 문제를 쉽게 풀어내는 저자들의 솜씨야말로 책의 미덕이다. 특별한 경제학 지식이 없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세율만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조세 제도를 어떻게 바꿔나가면 좋을지 보다 생산적 토론은 가능할 듯하다. 원제는 불의의 승리(The Triumph of Injustice). 기고자 : 양지호 기자
본문자수 : 2527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