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親노동 정부, 근로자에 판결 유리

경기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 지난해 직원 해고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계약직 직원 B씨가 지각을 밥 먹듯 하고 병원에 간다는 등 이유를 대면서 수시로 결근하길래 몇 개월 동안 지켜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해고를 통보했다. 그러자 B씨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낸 것. A씨는 "노동위에 출석했더니 조정 과정도 복잡하고 B씨가 '합의금을 주면 철회하겠다'고 주장해 200만원을 건네고 마무리지었다"면서 씁쓸해했다.

이 같은 부당 해고 신청이 현 정부 들어 급증하고 있다. 전국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에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을 한 건수는 2013년 1만2805건, 2014년 1만2996건으로 늘다가 2015년 1만2572건, 2016년 1만1224건, 2017년 1만1134건으로 주춤했다. 그러다 2018년 1만2550건으로 반등했고, 2019년 1만4849건, 2020년 1만5384건까지 상승했다. 이 정부 들어 38% 증가했다.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은 근로자가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느낄 때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제도다. 노동위가 부당 해고로 인정하면 사업주는 근로자를 복직시켜야 한다. 만약 근로자나 사업주가 지방노동위 판정에 불복하면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도 있다. 원래 노동자들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친(親)노동' 가치를 내세운 현 정부에선 남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에선 저(低)성과자에 대한 해고 요건과 절차를 정부 가이드라인으로 명확히 한 바 있다. 그 이전 저성과자를 해고하려면 '정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추상적으로 규정, 구제 신청이나 소송이 남발되고 노사 갈등이 커진다는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노동계가 "쉬운 해고를 부른다"며 반발하자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이를 없앴다. 이후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이 급증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가 노동자 권리를 강조하다 보니 '근로자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구제를 신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했다.

여기에 20~30대를 중심으로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노사 관계법에 대한 지식 공유가 활발해진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노동계 관계자는 "요즘은 알바생들도 '해고는 한 달 전에 반드시 서면으로 사유를 적어 통보하지 않으면 부당해고' '한 달 전에 해고를 통보하지 않았을 땐 해고 예고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노동위에 구제 신청하면 합의금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서로 공유해 대응한다"고 말했다. 수년간 지속된 경기 침체와 코로나 사태 영향이란 해석도 나왔다. 이준희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노사관계법제팀장은 "코로나 사태로 경영이 어려워진 사업주들이 직원들을 내보내거나 전환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둘러싼 구제 신청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부당 해고 구제 신청이 늘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이나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해만 해도 접수된 1만5384건 중 3190건이 기각·각하(20.7%)되면서 '신청 남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박지순 교수는 "해고에 대한 법 규정이나 절차를 명확히 한다면 해고를 둘러싼 불필요한 분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노동위원회 '부당 해고' 구제 신청 건수 기고자 : 김연주 기자
본문자수 : 166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