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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물밑합의, 95일만에 석방

이란에 붙잡혀 있던 한국 선박 한국케미호와 선장이 9일 풀려났다. 이란 측이 '해양 오염'을 이유로 억류한 지 95일 만이다. 이란 측은 석방 때까지 어떤 해양 오염을 일으켰는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번 석방은 미국이 최근 이란과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을 위한 협상에 나서면서 한국 내 동결된 이란 자금 중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 해제를 제안했다는 보도와 맞물려 이뤄졌다. 또 한국도 동결 자금을 이용해 이란의 밀린 유엔 분담금 1600만달러(약 180억원)를 내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란이 미국으로부터 제재 해제와 돈을 받기 위해 한국인을 '인질'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외교부는 이날 "이란 반다르아바스항 인근 라자이항에 억류돼 있던 한국케미호와 선장에 대한 억류가 오늘 해제됐다"고 밝혔다. 선박은 일단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항을 향해 출항했다. 푸자이라항에서 각종 점검 절차를 거친 뒤 귀국 일정이 정해질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지난 1월 4일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을 지나던 화학 운반선 한국케미호와 한국인 5명을 포함한 선원 총 20명을 해양 오염 혐의로 나포했다. 지난 2월 2일엔 선원 19명에 대한 억류를 해제했지만 선장은 계속 억류했다. 선장이 선박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였다.

한국과 이란 정부 양측이 모두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이번 한국케미호 나포는 70억달러(약 7조8400억원)에 달하는 이란의 한국 내 동결 자금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과 이란은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사실상 물물 교환으로 거래를 해왔다. 이란이 한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면 한국은 석유 대금을 이란중앙은행 명의의 기업은행 계좌로 넣어주고, 이란은 이 계좌에서 돈을 빼 생필품이나 필요한 물건을 사서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렇게 쌓여있는 돈이 70억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이란과 핵합의를 파기하고, 제재를 강화하면서 이란이 이 돈을 쓸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란과 협상 가능성을 시사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올 1월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란은 지난 6일부터 미국을 비롯한 핵합의 당사국들과 핵합의 복원을 위한 본격적인 협상에 나섰다. 외신은 미국이 협상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평가되는 농도 20％의 우라늄 농축을 중단하는 대가로 10억달러 규모의 동결 자산 해제를 이란 대표단에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현실적으로 10억달러의 이란 자금을 풀어줄 수 있는 곳은 한국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란도 우리 선박을 계속 억류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한국도 미국 제재하에서 허용된 이란과 인도적 교역을 확대하고, 동결 자금으로 이란의 국제기구 분담금을 내는 방안을 미국과 협의해 왔다. 이란은 1600만달러에 달하는 유엔 분담금 미납으로 투표권이 정지됐고 이를 한국이 대납해줄 것을 요구해왔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 분담금 납부는 가까운 시일 내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4월 이란과의 인도적 교역이 재개된 뒤 지금까지 약 3000만달러(약 336억원)의 의료기기가 수출됐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측은 이란을 설득하기 위해 고위급 사절단 파견도 약속했다. 총리실은 이날 정세균 총리가 11일부터 13일까지 이란을 방문하다고 밝혔다. 총리의 이란 방문은 44년 만이다. 기고자 : 조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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