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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기술서 友軍없는 삼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기도 온양의 삼성전자 패키징 연구소를 재작년 8월과 작년 7월 등 2년 연속으로 찾았다. 처음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이후 경영 대책 회의, 그다음은 삼성 반도체의 중장기 전략 점검을 위해서였다. 비상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온양을 찾은 것은 기존 업계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패키징이란, 제조한 반도체의 겉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포장'하고 반도체 회로의 전기 선(線)을 외부로 이어주는 작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성능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둥근 원판 '웨이퍼'에 미세하게 회로를 그려내는 선(先)공정에 달려 있지, 패키징처럼 단순한 후(後)공정에 좌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계의 한 임원은 "온양 사업장은 이전엔 삼성 총수가 방문했던 적이 없는 변방이었다"면서 "온양을 1년 새 2번이나 찾은 것은 삼성 파운드리의 미래가 패키징에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일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삼성전자는 첨단 패키징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나갈 우군이 잘 안 보인다는 것. 일본과 미국을 품은 대만과 달리,나 홀로 기술력으로 난관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초미세공정 한계, 다음 승부는 패키징

첨단 패키징이 반도체의 미래에 게임 체인저로 부상한 것은 파운드리의 주전장(主戰場)이 미세화 공정에서 첨단 패키징 싸움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미세화 공정은 반도체 회로의 선폭(線幅)을 나노(10억분의 1m) 단위로 좁혀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향상 단계마다 수십조원의 투자비가 드는 데다, 이마저도 몇 년 안에 물리적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게 첨단 패키징이다. 첨단 패키징은 기존의 포장·배선(配線) 수준이 아니라, 여러 기능을 가진 반도체를 하나처럼 이어붙이는 작업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극단적인 회로 미세화를 추구하지 않더라도 더 높은 성능을 뽑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CPU(중앙처리장치)·GPU(그래픽처리장치)·모뎀·메모리 등 서로 다른 반도체를 기판 여기저기에 갖다 붙이는 게 아니라 하나의 반도체처럼 연결해 시스템 전체로 최고 성능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월 반도체 첨단 패키징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새로 지정하고 기술 보호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시스템반도체용 첨단 패키징 세계시장은 2018년 270억달러(약 30조원)에서 2025년 650억달러(약 73조원)으로 연평균 14%가량 성장할 전망이다.

◇대만, 소재·장비의 강자 일본과 연합

TSMC는 현재 첨단 패키징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팬아웃 웨이퍼 레벨 패키징(FOWLP)'이라는 기술을 발전시켜 왔는데, 웨이퍼 단계에서 패키징 기술을 적용하여 최적의 성능을 뽑아내는 것이다. 둥그런 웨이퍼 위에서 모든 패키징 공정의 상당 부분을 완료한 뒤 사각형 칩으로 잘라낸다. 이 방식은 공정 정밀도를 높일 수 있지만 잘못하면 버리는 부품이 많아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TSMC는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해 시장 표준으로 만들었다.

반면 삼성은 '패널 레벨 패키징(PLP)'에 주력하고 있다. TSMC가 쓰는 웨이퍼보다 훨씬 큰 패널 위에서 패키징 공정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TSMC 방식보다 더 저렴하게 더 대량으로 패키징 공정을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TSMC의 방식만큼 기술이 완성되지 못한 탓에 전세 역전의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TSMC의 패키징 기술이 더 위협적일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첨단 패키징은 발전 여지가 무궁무진한데, TSMC가 첨단 패키징 소재·장비 기술력이 높은 일본, 패키징 관련 고급 기술이 많은 미국과 연구개발 생태계, 패키징 기술의 삼각(三角)동맹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의 연구개발 생태계는 TSMC가 지난 2월 설립을 발표한 일본 쓰쿠바의 반도체 패키징 연구센터가 맡을 전망이다. 이미 TSMC는 2019년에 도쿄대와 함께 첨단 패키징을 포함하는 설계기술 개발을 위해 도쿄대의 'd.lab'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래픽] TSMC의 파운드리 미래기술(첨단 패키징) 3각동맹

파운드리, 메모리반도체, 비메모리반도체, 패키징

반도체 산업은 크게 설계와 생산으로 나눌 수 있다. 두 가지를 모두 하는 기업을 종합 반도체 기업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인텔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반면 특정 분야에 치중하는 업체들도 있다. 설계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업을 팹리스(Fabless)라고 한다. 미국 퀄컴·애플·AMD, 영국 ARM 등이 있다. 이 팹리스 업체에서 위탁받아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주는 것이 ‘파운드리(foundry)’이다. 반도체에는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가 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에는 D램과 낸드플래시가 있다. D램은 정보처리 속도가 빠른 대신 전원이 꺼지면 정보가 사라진다. 반면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보관할 수 있어 PC와 스마트폰의 저장장치로 쓴다.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를 비메모리 반도체 또는 시스템 반도체라고 한다. 데이터를 처리하는 역할을 하는데 대표적으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가 있다.

패키징(packaging)은 제조한 반도체의 겉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포장하고, 반도체 회로의 전기 선을 외부로 이어주는 공정을 뜻한다. 과거에는 반도체 회로를 미세하게 그려내는 공정에 비해 단순한 작업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기 다른 반도체를 최적으로 연결해 성능을 높여주는 패키징 기술이 중시되면서 미래 성장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기고자 :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박건형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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