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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V' 받았다가 '분열의 씨앗'으로

코로나 백신 부족으로 전 세계가 아우성인 가운데 러시아가 자국산 백신을 '외교 비기(秘器)'로 활용, 유럽이 분열되고 있다. 러시아는 작년 8월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V' 백신을 개발해 70여국에 수억회분을 공급했다. 특히 지금은 적대 관계인 유럽연합(EU) 소속이지만 과거 냉전 시절 소련 영향권에 있었던 동구권을 집중 공략, 유럽의 갈등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가 백신으로 유럽에 불신과 분열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고 했다.

EU 회원국이자 강력한 친(親)서방국인 슬로바키아는 지난 3월 러시아산 백신을 도입했다가 후폭풍으로 총리가 사임하는 등 심한 정권 불안을 겪고 있다. 인구 550만명의 슬로바키아는 당시 하루 사망자가 100명에 육박, 코로나 사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에 이고르 마토비치 총리는 러시아와 스푸트니크V 200만회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직접 공항까지 나가 최초 물량 20만회분에 대한 환영식을 열고, 백신 상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슬로바키아 국민은 분노했다.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슬로바키아의 국민은 "(과거에) 그렇게 당하고도 또 러시아에 손을 벌리느냐"며 반발했다. 4개 정당이 모여 구성한 연합 정부 내에서도 거친 비판이 나왔다. "EU 회원국으로서 이적 행위나 다름없다"는 말도 나왔다. 결국 내각 구성원 16명 중 6명이 사임하며 연정이 붕괴 위기에 빠졌고, 이에 책임을 지고 마토비치 총리가 물러났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에 대한 헌신과 방역 위기 사이에서 갈등하던 슬로바키아가 갈가리 찢겼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동유럽 EU 회원국 헝가리도 러시아 백신 도입을 놓고 여론이 분열됐다. 헝가리는 EU 회원국 중 유일하게 러시아 백신을 승인하고 접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을 중심으로 "EU에서 아직 승인이 나지 않은 백신을 접종해선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헝가리는 제1·2차 세계 대전 때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반(反)러시아 성향이 강한 국가로 평가된다. 2차 대전 이후엔 소련 영향 아래 공산화돼 반감이 더욱 커졌다.

헝가리 여권은 백신 접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페테르 시야르토 헝가리 외무장관은 러시아산 백신을 맞은 후 "백신은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다. 러시아 백신을 맞지 않는다면 헝가리인의 건강과 생명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백신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지난 3월 러시아 백신에 대해 "의료 지원 수단이라기보다는 공격적 외교와 선전의 수단"이라고 했다. 벨기에 출신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EU는 선전 목적에 의한 백신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옛 소련을 잘 아는 국가 중에서도 단호하게 선을 긋는 나라들이 있다. 발트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 잉그리다 시모니테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세계를 분열시키고 통치할 무기로 스푸트니크V를 전 세계에 권하고 있다"며 러시아 백신을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와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던 앙숙인 폴란드 역시 "러시아 백신은 선택지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백신 공급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 한 러시아 백신의 위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EU가 스푸트니크V 백신 승인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며 스푸트니크V 100만회분에 대한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일부 국가가 러시아 백신 도입을 막고 있지만 그 시도는 실패할 것이며, (우리 백신을 원하는 나라에 대한) 공급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는 2014년 크림 반도 강제 병합 후 도입된 유럽의 제재를 깨뜨리려고 노력해왔다"며 "스푸트니크V가 유럽의 단결을 무너뜨리는 데 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 러시아 백신으로 분열된 유럽 각국 기고자 : 임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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