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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같지 않은 군대] (中) 휴대폰이 바꾼 병영

    원선우 기자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1.06.01 / 종합 A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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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애 훈련사진 이상해, 다시 찍어달라"… 부모들 황당 요구도

    "우리 애 피부가 민감해서 그런데 PX 화장품 품목을 좀 늘려줄 수 없나요?"

    육군 전방 대대장 김모 중령은 최근 대대원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말문이 막혔다. 김 중령은 "요즘은 20대 성인 남성들이 아니라 유치원생을 데리고 사는 기분"이라며 "학(學)부모보다 무서운 대상이 군(軍)부모"라고 했다. 군은 지난해 7월 전(全) 부대 병사 휴대폰 사용을 허가했다. 병사들은 일과가 끝난 뒤 부모들과 휴대폰으로 자유롭게 소통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일선 지휘관들은 군부모들의 온갖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애가 체력이 약하니 이번 혹한기 훈련은 빼달라" "일반전초(GOP) 경계 근무를 안 하는 부대로 바꿔달라" "취사병은 힘드니 운전병으로 보직을 바꿔달라" 같은 요구는 일상적이다. 저녁 점호 전 아들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심야에 대대장에게 불쑥 전화를 거는 어머니도 있다. "우리 아들 체온을 재고 온도를 알려달라"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 내역을 보여달라" 등 세세한 요구가 이어졌다. 중대장-당직사관 순으로 지시가 하달되고, 결국 온도계·내복약 사진 등을 전송했다고 한다. 훈련을 받는 아들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만족할 때까지 계속 다시 찍어 보내달라는 군부모도 있다.

    일선 지휘관들은 이런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들어주지 않으면 더 피곤해진다"고 대대장들은 입을 모은다. 한 군부모는 아들의 보직 변경이 어렵다는 지휘관에게 "당신네 부대에 내가 몰래 들어간 다음 '경계가 뚫렸다'고 인터넷에 퍼뜨리겠다"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각종 청원 게시판이나 상급 부대 등에 '지휘관 해임' 요구를 넣기까지 한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민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군부모들은 대대장 선에서 해결이 안 되면 상급 부대나 국방부 군사경찰대의 문을 두드린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운영하는 '국방 헬프콜' 신고·상담 건수는 2019년 4만8000여건에서 휴대폰 사용이 전면 허용된 지난해 5만8000여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4월 기준 2만건 가까이다. 이 때문에 사단·군단 등 상급 부대의 감찰 실무자들도 업무 과중을 호소한다. 한 감찰 실무자는 "아무리 황당한 요구라도 일단 접수가 됐으면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종결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런 '민원 노하우'는 현역병 부모·가족 등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유된다. 육군 관계자는 "힘없는 중대장·소대장보다는 대대장에게 '직통'으로 민원 전화가 걸려온다"고 했다. 회원 4만명가량이 모인 한 커뮤니티에선 '아들 부대에 민원 넣었습니다' '제가 너무 예민한가요?' 등의 '민원 후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육군 관계자는 "지휘관들이 상급 부대 감찰 등으로 진급에 불이익을 겪지 않을지 두려워한다는 점을 요즘 군부모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휴대폰 사용 허용 이후 부모와의 소통도 활발해지면서 '생활 밀착형' 민원도 잦아지고 있다. "A 병장이 우리 애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하니 둘을 떨어뜨려주세요"라는 식이다. 지휘관들은 "'초등학교 자리 배치'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라면서도 이런 민원도 모두 들어주고 있는 형편이다. 폭언·욕설·구타 제보일 경우 진상 파악보다는 우선 격리부터 하고 본다. 앞뒤가 바뀐 셈이다. 한 전방 지휘관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거나, 부모님이 군생활에 신경을 쓸 만한 여유가 없는 병사들은 위화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일과 이후엔 주로 운동을 했던 병사들의 취미 활동도 변하고 있다. 휴대폰 전면 허용과 코로나 영향으로 일과 후 생활관에 누워 휴대폰에 몰두하고 있는 병사들이 늘었다. 저녁 점호 전 6인 생활관 청소는 '가위바위보'로 1명에게 몰아주고 5명은 휴대폰을 한다. 미국 주식, 코인을 하는 병사들도 적잖다. 병영 내에선 휴대폰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지만, 몰래 사진을 찍어 'SNS 인플루언서'로 변신한 병사도 있다.

    [그래픽] 일선 지휘관들 쩔쩔매게 하는 병사 부모들 / 지휘관·간부들은…
    기고자 : 원선우 기자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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