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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진화의 배신

    이은희 과학저술가

    발행일 : 2021.06.01 / 특집 A2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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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안 빠지는 살… 구석기 시대엔 생존 전략이었어요

    코로나로 잘 돌아다니질 않다 보니 '확찐자'가 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살을 빼겠다고 준비 운동도 제대로 안 하고 갑자기 몸을 격하게 움직이다간 발목을 삐끗하기 십상이에요. 발목은 툭하면 삐거나 접질려 골머리를 썩이는 부위죠. 왜 그런 걸까요. 바로 발목 뼈 구조 때문이에요. 발목이 튼튼한 일체형 뼈 하나로 이뤄졌다면 어지간해선 충격을 받아도 뒤틀릴 일이 없겠죠? 그런데 발목 뼈는 작은 뼈 7개가 모여서 이뤄졌어요. 이 일곱 뼈 사이에는 인대가 있어 접착체처럼 뼈들을 이어주고 부드럽게 해줍니다. 그러다 발목을 접질리면 인대가 늘어나거나 끊어져 고통을 주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세포와 장기들이 작동하는 원리나 크게 다친 사람이 회복하는 걸 보면 인체의 경이로움에 놀라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쓸데없이 복잡하기만 한 발목 구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 몸에는 발목처럼 쓸모없고 복잡하기만 한 비효율적인 부위가 꽤 있어요. '우리 몸이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진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이야기죠.

    우리 몸 곳곳의 결함들

    발목처럼 비효율적인 부위는 목이에요. 우리는 코로 공기를 마시고 입으로 음식을 먹어요. 입구는 다르지만, 공기가 지나가는 기도와 음식이 지나가는 식도는 목에서 하나로 합쳐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꿀꺽 삼킬 때마다 일시적으로 기도를 닫아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하죠. 하지만 이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아서 음식을 입에 문 채 갑자기 숨을 들이마시면 순간적으로 음식이 기도로 넘어갈 수도 있어요. 보통 사레가 들려 캑캑대는 걸로 끝나지만 심하면 질식해서 사망하기도 하죠. 미국에선 2014년에만 5000명 가까이 음식물 때문에 목이 막혀 죽었다고 해요. 사람도 조류와 파충류처럼 공기를 목구멍을 거치지 않고 바로 폐로 보내면 이런 일이 안 생길 텐데, 참 이상한 구조입니다.

    이렇게 비효율적인 구조가 우리 몸 곳곳에 있는 건 '진화가 지닌 특성' 때문이에요.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진화는 무작위적으로 일어난 작은 변이(같은 생물 종 사이 나타나는 서로 다른 특성)들이 아주 오랜 시간 축적된 결과로 알려져 있어요. 그러니까 진화는 누군가 미리 주어질 환경을 예측해 장단점을 분석한 뒤 전체 구조를 설계하는, 말하자면 로봇을 만드는 것과는 달라요. 우리 몸에서 그때그때 일어나는 다양한 돌연변이(부모에게 없던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는 현상)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거죠.

    보통은 환경에 살아남기 유리한 형질이 후대로 물려지는 게 많긴 하지만, 가끔은 불리한 형질도 생존에 크게 지장이 없다면 살아남긴 해요. 우리 발목이나 목처럼요. 우리 신체 구조가 마치 '땜질'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왜 살찌긴 쉽고 빼긴 어려울까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진화에 대한 사실이 또 있어요. 바로 현대인의 고질병들이 알고 보면 과거 우리가 생존할 수 있게 진화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대표적인 것이 '비만'이에요. 구석기시대 인류에겐 먹을거리가 늘 부족했어요. 이 때문에 음식이 생겼을 때 많이 먹고 즉시 몸속에 지방으로 저장해두도록 유전적으로 진화했죠. 하지만 현대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데도 우리는 여전히 많이 먹고 지방으로 저장해요. 살을 찌기는 쉬운데 빼기는 어려운 게 바로 그 때문이에요. 또, 과거엔 물과 나트륨이 부족해 탈수(脫水)가 일어나기 쉬워서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도록 진화했는데, 현대에는 나트륨 과다 섭취로 고혈압 환자가 넘쳐나죠. 과거 진화로 인류를 생존하게 해줬던 유전적 형질들이 이제는 우리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거예요. 믿었던 '진화'에 '배신'당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지요.

    하지만 이 역시 진화의 본래 특성 때문이에요. 진화는 엄청나게 느린 속도로 진행된답니다. 최근 100여년간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급속도로 변했는데, 우리 몸은 이 환경에 맞게 진화하지 못하고 여전히 구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어요. 비만,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은 개인의 잘못된 생활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전자 탓도 있는 셈이죠.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유전자에만 돌리면 유전자는 억울할 거예요. 지금은 불리하다고 치부하지만 과거 그 유전적 특성 덕분에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요. 유전자 처지에선 '진화의 배신'이 아니라 '환경의 배신'이 맞을 거예요. 그 환경을 만들어낸 건 인간들이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진화가 우리에게 고차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커다란 뇌를 남겨 줬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유전적 특성이 변화한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채고 거기서 살아남을 방법을 고안할 능력이 있는 거예요.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생물 종이 현대 환경에 적응하는 특유의 생존 전략이랍니다.

    [아킬레스건]

    인류가 직립보행을 한 지 수백만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제대로 적응을 못 했다는 증거가 있어요. 바로 발뒤꿈치에 있는 힘줄 '아킬레스건'입니다. 아킬레스건은 종아리 근육과 발뒤꿈치 뼈를 연결해서 체중을 받쳐주는 중요한 힘줄이에요.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무릎이 앞으로 구부러졌기 때문에 체중이 발 앞쪽으로 실리지만, 인간은 발 뒤꿈치에 체중 대부분이 실려요. 그만큼 아킬레스건의 부담이 늘어났죠. 그런데도 이를 보호하는 조직은 아직 없어요. 그래서 쉽게 파열될 수 있죠.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요. 아킬레스건이 '치명적 약점'이란 뜻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죠. 아킬레스건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어요. 신과 인간 사이 태어난 아킬레스는 발뒤꿈치 부분을 빼고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이었는데, 트로이 전쟁에서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고 죽었어요. 이 때문에 발뒤꿈치 힘줄을 '아킬레스건'으로 부르는 거예요.

    [그래픽] '진화의 배신'을 보여주는 인체 부분들

    [그래픽] 인류의 생존을 도운 특성들이 현대인을 아프게 해요.
    기고자 : 이은희 과학저술가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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