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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포로수용소에서 태어난 걸작,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최은규 클래식 음악 평론가

    발행일 : 2021.06.01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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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상황을 1년 넘게 겪다 보니 어느덧 새로운 음악회 관람 문화에 꽤 익숙해졌다. 공연장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체온 측정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QR코드를 찍은 후 관객 질문서를 입력하고, 저 멀리 마스크 쓴 음악 친구들의 얼굴도 단번에 알아보고 인사한다. 때로는 마스크를 쓴 채 객석에 앉아 역시 마스크를 쓴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조금 어색할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 코로나가 바꾼 새로운 공연장 환경에 적응한 듯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크를 쓴 채 답답한 상태로 음악회를 관람해야 하는 요즘, 전보다 음악회에 더 자주 가게 된다. 힘든 상황 속에서 음악이 더 절실해진 것인가. 코로나로 실황 음악회가 드물다 보니 음악회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고 콘서트홀을 울리는 마지막 음 하나까지 필사적으로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도 20세기 음악가 메시앙이 포로수용소에서 곡을 쓸 때의 심정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Olivier Messiaen·1908~1992)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조류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새소리를 좋아하여 새소리를 악보로 적었고 이를 바탕으로 '새의 카탈로그'와 같은 독특한 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메시앙의 작품 중에서도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메시앙 특유의 신비로운 악상을 담은 대표작으로, 놀랍게도 메시앙이 전쟁 포로로 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탄생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메시앙은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괴를리츠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의 엄격한 규율 속에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야 했던 메시앙은 소리가 색으로 보이는 색청(色聽) 환각까지 겪었지만 그럴수록 음악을 향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수용소에 수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리네티스트 앙리 아코카를 알게 된 메시앙은 아코카를 위해 '새들의 심연'이라는 짧은 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곧 수감자 중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 불레르와 첼리스트 에티엔 파스키에를 알게 되었다. 포로수용소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만난 음악가들은 다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싶었지만 첼리스트인 파스키에에겐 악기가 없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돈을 마련했고 결국 파스키에에게 첼로를 사줄 수 있었다.

    악기 문제를 해결하게 되자 메시앙은 먼저 음악가 3명이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짧은 3중주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이를 좀 더 발전시켜 피아노가 편성된 4중주곡을 완성했는데 이 곡이 바로 메시앙의 대표작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다. 요한계시록에서 영감받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총 8악장 구성의 대작으로, 메시앙이 앞서 수용소의 음악가들을 위해 작곡한 '새들의 심연'과 '간주곡'은 이 4중주곡의 3악장과 4악장이 되었다.

    마침내 1941년 1월 15일 저녁 6시. 괴를리츠 포로수용소에서 메시앙과 동료 음악가들이 마련한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혹독한 추위가 엄습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회가 열린 수용소의 강당은 음악을 듣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사람으로 꽉 들어찼다. 청중 가운데는 수감자와 사제뿐 아니라 직업 군인과 의사, 근처의 농부와 일꾼, 일반 시민도 있었다.

    메시앙은 연주회에 앞서 그의 4중주곡에 담긴 요한계시록의 의미에 대해 강의한 후 피아노 앞에 앉아 동료 음악가들과 함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연주했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비롭고 독특한 음악을 들은 청중은 메시앙의 음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절박한 전쟁 상황이었던 만큼 종말과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메시앙의 4중주곡은 모두에게 각인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메시앙의 포로수용소 음악회가 열린 지 80년이 지났다. 오늘날의 음악회도 전시 상황의 음악회나 다름없어 보인다. '객석 띄어 앉기'로 음악회 좌석이 줄어들고 확진자 발생 등으로 공연이 갑자기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 고립돼있던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인간적인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실황 음악회는 더욱 값지다. 메시앙은 1941년 포로수용소 음악회에 대해 "그토록 완전히 집중하고 이해하며 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지금의 코로나 상황 속 음악회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고자 : 최은규 클래식 음악 평론가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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